''잉어연못''에는 잉어 킬러 터줏대감이 산다

왜가리
울산대공원에는 연못에다 애지중지 기르는 비단잉어를 못 살게 구는 심술궂은 ''터줏대감 새''가 한 마리 산다. 키도 그렇고 날개를 폈을 때의 길이도 그렇고, 크기가 엄청나다 보니 마땅한 포식자도 없어 ''군림한다''는 표현이 걸맞은 새다.

대공원을 관리하는 울산시시설관리공단은 동문 쪽 ''잉어연못''의 비단잉어들 때문에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값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연못의 비단잉어, 그것도 어린 치어들이 영문도 모르게 그 수가 자꾸만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이 20cm짜리 비단잉어 한 마리면 현 시세로 25-30만원이나 호가한다지 않는가.

"4년 전(2003년 1월)에는 알을 많이 나은 덕분에 새끼잉어가 엄청나게 많이 불어나 시민들에게 분양까지 할 정도였는데, 요새는 씨가 말라 간다 할 만큼 치어는 보기가 힘들어졌지요."

궁여지책으로 특별조사팀(?)까지 구성해서 추적에 나섰다. 그 결과 어떤 녀석이 주범이란 것 정도는 대충 알아냈다. 깃털이 잿빛이고 두루미를 닮았으니 필시 ''재두루미''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재두루미''라면 천연기념물에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보호조수''가 아닌가! 그러니 함부로 포획할 처지도 못 됐다. 2차로 만든 울산대공원의 ''동물농장'' 근처에 짓고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오는 9월 문을 열고 전문인력이 충원되면 ''생포 작전''이든 무엇이든 그 때 가서 처리해도 괜찮겠지, 하고 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잉어
그러던 차에 사고가 한 건 터졌다. 어린이날 하루 전인 지난 5월 4일, 아침부터 잉어연못에 비단잉어 큰 놈 한 마리가 죽은 채 떠올라 있다는 시민의 제보였다. 이날 오전 부랴부랴 현장을 수색한 조사팀은, 이 사건이 분명 ''재두루미'' 그놈의 소행이라고 단정짓기에 이른다.

"죽은 잉어를 떠올려 놓고 보니 비늘이 벗겨지고 온 몸에 부리로 쪼은 흔적이 여러 군데 나 있었지요. 길이가 20cm를 넘다 보니 마음대로 한 입에 삼키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시설관리공단 이호열 차장은 만일에 대비해서 증거를 확보해 두자는 뜻으로 ''채증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토요일인 지난 5일 12일 오전, 마침내 사진 찍기에 성공한다. 잉어연못 바위에 녀석이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 근처 올림푸스 아파트 앞 소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 심지어는 멀리 대공원 정문 쪽 자연못에 진을 치고 있는 장면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관리공단 직원들에 따르면, 이 터줏대감 새가 주로 나타나는 곳은 정문 쪽 ''풍요의 늪'' 중에서도 ''소풍요''라고 이름지은 습지형 자연못과 동문 쪽 인공 ''잉어연못'' 맨 한가운데 평평한 바위 위다. 나타나는 시각은 오전 8시 전후해서인데 이 날만은 어찌된 셈인지 오전 11시 30분쯤에도 사진이 찍혔다.

대적할 이가 없으니 배짱이 더 두둑해진 것일까. 사람이 나타나도 가까이만 오지 않는 이상 제 왕좌(?)에서 떠날 줄을 모를 만큼 조면수심(鳥面獸心)이 되어 가는 것일까.

기자는, 재수만 좋다면 카메라에 담는 행운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진 첫 촬영 나흘 후인 5월 16일 점심나절, 공단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풍요의 늪''과 ''잉어연못'' 일대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대신 또 다른 증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잉어연못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그리 멀지 않은, 대공원 바로 근처 남구 신정2동의 개인주택에 산다는 정태봉(60)씨였다. 처음 본 장면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산책하러 새벽 4시 30분쯤 집을 나서서 30분 후인 새벽 5시쯤에 연못에 와 보니 글쎄, 덩치가 굉장히 큰 새 한 마리가 저 바위 위에 버티고 서 있더라고요. 오늘 처음 봤지요.''

정씨는 다른 사실도 귀띔해 주었다. 동문 쪽 ''울산대종'' 뒤편 운동장과 산자락 아래 야외공연장 사이 작은 연못에는 논고동이 많이 서식하고, 이 먹이를 찾아서 몸빛이 새하얀 백로가 찾아 오더라는 것. 그 때가 같은 날 오전 9시쯤이라 했다.

이틀 후인 5월 18일 기자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대공원을 다시 찾았다. ''재두루민가 뭔가, 심술궂은 터줏새가 없는 잉어연못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는 사실만 확인하고는 곧장 백로가 노닌다는 ''작은 연못''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짝짓기 철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백로 한 쌍이 위와 아래로 그림을 만들며 ''사랑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성능 좋은 카메라만 지녔더라고 좀체 보기 힘든 작품사진 한나쯤은 건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이를 눈치챈 백로 한 쌍은 푸드득 하고 저 건너 소나무 위로 자태를 감추고 마는 것이었다. 그 아쉬움이란…!
백로
5월 16일의 회동에서 시설관리공단 이호열 차장은 직원이 찍었다는 ''재두루미''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암만 해도 그 새는 ''재두루미''가 아닐 것 같았다. 멸종위기 보호새가 울산대공원에 나타났다면 그건 특종감이란 말까지 건네며, 확실이 모르긴 해도 그 터줏새는 재두루미가 아니라 ''왜가리''일 것이라는 추정을 제시했다.

이날 해질녘, 동식물 전문가에게 전화로라도 문의하기로 했다. 우선, 고교 교사이면서 박사학위를 지닌 무룡고등학교 정우규 박사와 통화했고, 그는 다시 ''태화강의 새''에 대해 조예가 깊다는 김상만 울산시교육위원을 추천했다. 식물분류학 쪽이 전공인 것으로 알려진 정 박사는, 재두루미, 왜가리, ''검은댕기 해오라기'' 중 하나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두 번째 통화에서 가까스로 연결된, 중국 여행을 막 다녀오는 참이라는 김상만 교육위원은 몇 마디의 설명만으로도 금세 새의 이름을 알아맞추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 올라간다면 그건 재두루미가 아니고 왜가리일 겁니다. 울산에 재두루미가 드물게 나타난 적도 있지만, 그 새는 겨울철새이고, 지금 볼 수 있다면 필시 왜가리가 맞을 겁니다."

그 새가 왜가리라는 사실은 다음날인 18일 오후, 김상만 위원을 직접 만나 시설관리공단 측에서 직접 찍은 사진 파일을 보는 순간 이내 확인됐다. 시설관리공단이 왜가리 사진을 찍기까지의 내력을 전해 들은 그는 전날 정우규 박사와 같은 취지의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기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울산대공원에 왜가리라도 한 마리 터줏대감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깁니까? 그 사실을 알면 시민들이 일부러라도 한 번 더 대공원을 찾게 될 테니, 시설관리공단은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퇴출 작전이 아닌, 보호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울산시시설관리공단은 왜가리 사진을 찍어둘 무렵부터 이미 ''터줏대감 새''를 보호해야겠다는 방침을 굳혀 두고 있었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직원들 입에서 나왔지만, 보호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요."

비록 작아 보이는 일일지언정, 위해조수(危害鳥獸)가 아닌 이상 ''철새 보호'' 즉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일이 바로 울산대공원의 이미지를 ''생태공원''으로 잡아 가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병규 관리단장의 귀띔이었다.

※ 지난 2002년 4월 30일 개장한 울산대공원에서 비단잉어를 기른 것은 2004년 7월, 국산과 외국산 50마리를 연못에 풀어 놓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한때는 매가 날아와서 낚아채 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왜가리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고, 비단잉어는 4,5월이 산란기여서 시설관리공단의 고심도 그만큼 크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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