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코미디 영화 연출에 한 몫 하는 장규성 감독과 함께 관객의 배꼽을 빼게 했던 차승원을 기억한다면 그 모습을 잠시 잊어야 할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CF에서의 호탕한 웃음과 시원시원한 목소리도 영화 ''아들''을 보는 동안은 접어둬야 한다.
영화배우 차승원이 ''코믹 연기의 귀재''라는 수식어에 진한 감정 연기를 더하며 한층 멋진 연기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나리오를 받고 이 영화를 안 하면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만약 출연하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했을 것 같아요."
''아들''은 무기수로 복역 중인 아버지가 단 하루 외출을 허가받고 얼굴도 모르는 아들(류덕환 분)을 만난다는 가슴 저미는 이야기.
어쩌면 지난해 코믹 연기를 벗어나 열연을 펼쳤던 ''국경의 남쪽''이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이와 비교하며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도 적지 않을 터.
내 속의 정서 연기에 담고파
"이 영화를 찍으면서 ''국경의 남쪽''을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정말 감정의 깊은 골로 들어가고 싶었다면 차라리 신파극을 선택했겠죠."
''쾌활하고 재미난'' 이미지로 조금은 고정됐던 자신의 모습을 바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모습 역시 탐탁지 않았다.
"이제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하겠죠. 내 속에 있는 정서라는 게 있는데, 그걸 지금까지 연기와 연결시키진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정서를 찾고 싶은 생각이 가장 컸었죠." 실재 자신의 가정에서 아버지인 차승원에게 아버지의 역할이 더 끌렸던 것이 아닐까. 혹자는 "아버지인 배우는 언제나 진실한 아버지 역할을 꿈꾼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참 묘해요. 아버지 역할을 하다 보니 내 아버지가 보이더란 거죠. 내가 어렸을 적에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 마음, 그런 것들이 속을 뭉클하게 하더라구요."
차승원이 어렸을 적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북 출신의 무뚝뚝한 아버지였다. 차승원 역시 그런 아버지와의 거리를 느꼈고 "설마 내 속을 저분이 알까" 싶은 마음에 다가서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신 분이지만 사실은 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겠죠. 그냥 제가 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하면서 옆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무뚝뚝하지만 깊이와 느낌이 있는 분이셨어요."
그렇다면 ''아들''이라는 영화에서 차승원의 밝은 모습을 보기는 힘든걸까.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
짧지만 깊고, 많지 않지만 풍부한 것들이 있는 영화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가벼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게 아마 장진 감독 식 웃음 코드이겠죠. 아주 심각한 장면에서도 갑자기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정서는 저와도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너무나 진지한 장면에서 새어나오는 웃음. 그런 것들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어색할 수 있는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깊은 감정의 골과 웃음까지 포함한 연기가 펼쳐졌지만 ''아들'' 속에는 중심인물도 많지 않고 그 인물들의 대사는 더욱 적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표현이 답답할 수도 있을 터.
"많지 않은 대사이지만 대사에 어떤 힘 같은 것이 있어요. 그 위에 뭔가를 더 실어 보려고 애를 쓴다면 더 이상해질 것 같던걸요. 대사와 대사 사이, 연기와 연기 사이에 빈 공간이 많지만 관객이 감정을 이어 가는 데는 쉴 틈을 주지 않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쓰여 진 만큼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는 차승원의 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어차피 제게도 아버지의 모습이 배어있겠죠. 그게 무서운 것이다. 꼭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도 배어나오는 것. 그게 바로 연기겠죠."
대사도, 인물도 많지 않고 시간적 배경도 아버지가 특별 외출을 나온 단 하루인 영화 ''아들''. 차승원에게 깊은 연기를 표현할 요소들이 부족하진 않았을까.
"작아 보이지만 크고, 적게 든 것 같지만 아들과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들어있는 영화죠. 아주 좁은 공간에서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난다. 눈물, 웃음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리라 자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