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는 달팽이가 아니다

[이서규의 영어와 맞짱뜨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영어 어휘는 동식물 관련 단어가 아닐런지 모르겠다.

하긴 거꾸로 미국인이 우리나라 산천에 널려있는 야생풀이나 나물 종류의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동물학자나 식물학자가 아닌 이상 이 많은 풀 이름, 들짐승 이름을 다 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사한 동물이 있으면 모양만 비슷해도 그대로 이름을 제멋대로 짓는 경향이 강하다. 서양인의 눈에는 모양이 비슷해도 아예 다른 종류의 동물로 분류되는 것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달팽이는 ''snail''이지만 우리말로 민달팽이라고 하며 집이 없는 달팽이는 ''slug''이다. 아예 단어의 모양이 다른 이유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이 달팽이는 기존의 달팽이와 생물학적으로 관련도 없고 먹을 수도 없기 때문에 따로 분류한 것이다.

우리는 벌(bee)과 말벌(wasp)을 같은 벌로 보지만 벌은 꿀을 생산하고 말벌은 양봉장에서는 방해꾼에 불과하다. 꿀을 만들지 못하니 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는지 그 이름조차 친척관계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판이하게 다르다.

이에 비해 서양인들이 실수하는 것도 있다. 공작새는 ''peacock''라고 하는데 아마 닭(cock)의 일종이라고 여긴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자주 민화에 등장한 꼬리가 1m가 넘는 닭이 있었다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닭은 닭이요, 공작새는 공작새일 뿐이다.

미국에는 원래 서식하지 않다가 유럽인들이 이주하면서 구대륙에서 들여온 동물이 많다. 말, 양, 소가 모두 그렇고 칠면조 역시 마찬가지다.

오죽 하면 소와 비슷하고 고기도 먹는 들소는 들소가 아닌 ''buffalo''라고 따로 분류하지 않는가? 이에 비해 미국 전역의 산에 서식하는 퓨마는 ''mountain lion''이라고 하는데 사자와 퓨마는 엄연히 다른 짐승이다.

긴 귀와 짧은 꼬리를 가진 스라소니는 어떤가? 영어로는 ''bob cat''이라고 하는데 고양이(cat)와 모양이 다른데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이 우습기만 하다.

미국의 음식점에서 파는 우리 김밥은 김으로 말았다는 것을 빼고는 일본 스시와는 공통점이 없다.

영어로는 보통 ''rice wrap''이라고 해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냥 ''밥 싼 뭉치'' 정도로 김밥에 대한 영어명칭은 없었다. 이 김밥을 ''kimbob''으로 표기하는 식당이 늘고 있는데 김밥이 이제 영어어휘까지 늘려주는 셈이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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