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서울 이화여고에는 유관순 기념관이 있다. 이 곳은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 60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린 장소다.
기념관 1층 정면 벽에는 세로 1미터 크기의 거대한 유관순 열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지난 74년 건립된 기념관의 벽면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이 그림은 놀랍게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친일 화가 김인승이 1959년에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유관순 열사의 기존의 영정 3점 가운데 하나. 나머지 두 영정이 친일 화가들이 그렸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될 예정이지만 이 그림은 그렇지 않다.
30년간 유관순 열사 후배들에게 노출돼 왔던 것이 증명하듯 이 학교는 이 그림을 그린 김인승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눈치다.
이 학교에서만 29년을 재직했다는 학교 관계자는 문제의 영정에 대해 "실물에 가장 근접해 있고 유관순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그림"이라며 최근 유관순 열사의 새 표준영정 제작 작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인승은 일제 강점기부터 80년대까지 한국 화단의 원로로 군림한 인물로 ''성스러운 전쟁에 미술로 보국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친일 화가 단체 ''단광회''에 참여해 활동한 전력이 있다.
''단광회''는 지난 43년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실시되자 이를 기념해 회원 18명 전원이 4개월간 합숙하며 백 호 크기의 ''조선징병제시행 기록화''를 제작하기도 한 단체다.
김인승은 이밖에도 작품의 제작연대를 일본식 황기로 표기하는가 하면 ''선전'' 출품작에는 ''김인승''의 일본어 발음 ''Jinsho Kin''으로 작가 서명을 하기도 했다.
문제의 영정은 지난 96년 5월 유관순 열사가 숨진 뒤 76년 만에 받은 명예졸업장에도 새겨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신문사와 이화여고, 충청남도가 함께 수여하는 유관순 상(賞)도 바로 김인승이 그린 영정이 바탕이 됐다.
서울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 옆 안중근 의사 동상도 친일 미술가의 작품이다.
지난 74년 제막된 이 동상은 김인승의 동생이자 역시 대표적인 친일 예술가인 김경승이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의사숭모회 측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오는 2009년까지 인근에 신축할 예정이면서도 동상을 없앨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관계자는 "그 분의 순수한 작품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동상을 옮긴다거나 없앤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승은 이밖에도 남산에 위치한·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과· 도산 안창호 선생 등 애국선열의 동상을 도맡아 제작했다.
친일예술가가 제작한 독립열사의 영정과 동상 앞에서 참배객들이 고개 숙여 참배하는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