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성은 지난해 연봉의 80%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한 바 있어서 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별에서 고 영(31)씨가 자신의 유언장에 공증을 받았다.
유언장에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7평짜리 원룸 전세 계약금인 1500만원을 유엔아동기금인 유니세프에 기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입의 대부분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는 고씨가 또 다시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고씨는 "부의 대물림이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유니세프의 제안을 듣고 상당히 고민한 끝에 결정 내렸다"며 "하나의 작은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씨는 "지금은 혼자 살아서 편한 상태에서 결정내릴 수 있었다"면서도 "결혼해서 아내와 아이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어서 하게 됐다"면서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씨는 앞으로 2년씩 늘어나는 재산만큼 기부 금액을 늘려나갈 계획이며 그 때마다 유언장을 새롭게 공증받을 생각이다.
고씨는 "자신을 인정해 준 세상에 다시 값없이 되돌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부의 대물림이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하나의 작은 사례가 됐으면 해"
유산 기증하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는 이 운동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고영씨를 선정해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씨는 지난해 연봉의 80퍼센트인 2300여만원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병원비와 등록금 등으로 물심양면으로 도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영씨 "부의 대물림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작은 사례가 됐으면"]
유니세프 장성윤 팀장은 "우리 나라에서는 재산을 남긴다는게 자식들에게만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고영씨의 경우는 돈이 많은 사람만이, 나이 든 사람 만이 유산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지 않아도 또 나이가 젊더라도 얼마든지 유산을 기부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며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니세프는 이번 유산 기부는 현재 누구보다도 주변 사람들을 돕는 데 적극적인 고영씨가 죽은 뒤에도 미래의 사람들을 돕겠다는 약속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씨가 이날 유언장을 공증하는데 증인으로 나온 고씨의 대학 후배들도 의미 있는 자리에 함께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유산 기부는 죽은 뒤에도 미래의 사람들을 돕겠다는 약속의 의미
공증을 하는데 꼭 필요한 두 명의 증인 가운데 유산을 남기게 될 경우 집행을 맡게 될 유언 집행자인 김성은(27, 고려대 경영학과)씨는 "유산 기증은 굉장히 다른 차원의 의미가 있다"며 "대단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증인인 김택형(28, 고려대 대학원생)씨는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유산까지 기증한다는 건 결혼도 안한 상태에서 맞지 않은 선택이 아닌가 싶었는데 취지를 듣고 나서는 젊을 때도 가능한 일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공증 자리에 함께 한 후배 강병욱씨 역시 앞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고 밝혔다.
강씨는 "부의 축적을 능력의 증표로 가치를 부여하는 이 시대에 이런 기부가 계기가 돼 널리 전파됐으면 한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도 동참하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 과정을 지켜 본 변호사도 이런 의미 있는 공증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법무법인 한별의 박진철 변호사는 "젊은 사람들은 재산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한 편인데 평범한 젊은 직장인이 유산을 기부한다는 데서 놀랐고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씨는 물질적인 기부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경영 컨설턴트인 고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기부받은 중고품을 판매해 마련한 기금으로 사회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무료 컨설팅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 전상준 팀장은 "물질적인 보상이 없는데도 고씨는 시간 약속 한 번 어긴 적이 없었고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등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왔다"며 "기존의 컨설팅 방식과는 다른 사람 중심의 컨설팅 방식이라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고 그래서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저마다 많이 갖고 많이 물려주고 싶어 하는 요즘, 자신의 현재의 재산은 물론 다가올 미래까지도 남김없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한 청년의 용기와 기백은 각박한 세상을 일깨우는 나팔 소리를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