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PC방을 떠나지 못하는가

"모니터 앞에선 근심 걱정 없어요"

"최근에는 3일 연속으로 (PC방에) 있었지만 길게는 한 달 동안 지낸 적도 있습니다."

15일 밤 11시40분 청주시 상당구 봉명동에 위치한 모 PC방. 이 곳에서 만난 오경수(32·청주 사직동·가명)씨는 이날도 단골 PC방에서 평소 즐기던 리니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

5t화물트럭 운전기사라는 오씨는 "일감이 있으면 오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PC방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탓에 노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마음 편할리 없는 오씨에게는 PC방이 자기만의 편안한 휴식처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밤 새워 PC게임을 즐긴 후에는 인근 찜질방에서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인 뒤 또 다시 PC방으로 출근(?)한다고 오씨는 귀띔했다.

10여 년 전부터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PC방이 이젠 청주지역에만 350여 개가 성업을 하면서 낮에는 물론, 밤과 새벽시간대에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로 인해 밤늦은 시간 PC방에서는 무리지어 오는 20~30대 젊은이들은 물론, 40~50대 중장년층, 심지어 퇴직 이후 소일거리삼아 바둑과 고스톱을 즐기는 60대까지 다양한 계층들을 접할 수 있다.

이날 역시 직장동료들과 술 한 잔 얼큰하게 마시고 팀을 짜 온라인게임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하기 위해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PC방을 찾았다는 한모(28·청주 율량동)씨는 "1차, 2차, 3차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적당히 마시고 술도 깰 겸 PC방을 찾는 것이 이제는 보편화됐다"며 "팀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하다보면 동료애도 쌓을 수 있고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인 16일 새벽 1시경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PC방.

이곳에서는 30~40명의 젊은 남녀들 속에서 머리가 희끗한 노(老)신사가 홀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서는 한창 모니터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중소기업 간부를 지내다 몇 해 전 명예퇴직을 했다는 고모(63·청주시 우암동)씨는 "애들도 다 크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바둑을 배우게 됐다"며 "집에서는 마누라 눈치가 보요서 가끔씩 PC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PC방


하지만 이처럼 건전한 문화로 자리매김해야 할 PC방이 일부 몰지각한 업주들에 의해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이용되는 것 또한 어두운 밤만큼이나 PC방의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6년째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Y모(38)씨는 "청주시내 PC방의 50% 정도는 밤 10시 이후 18세 이하 청소년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공공연히 어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낮 시간대에는 청소년 출입이 많은 까닭에 금연석과 흡연석을 명확히 구분해야 함에도 불구, 비용이 든다는 핑계로 이를 무시하는 PC방이 적지 않다는 사실 역시 PC방의 또 다른 음지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유흥업소가 밀집한 청주시 가경동, 복대동, 용암동 등지에 분포한 PC방들은 새벽 늦은 시간까지 갈 곳 없어 PC방에서 전전하는 10대들의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다.

16일 새벽 1시 40분경 청주시 복대동에서 만난 P군(17·고교 중퇴)은 "낮에 친구들과 놀다보면 밤에는 특별히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어서 피씨방에서 밤을 자주 샌다"며 "게임을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라서 좋다"고 말했다. P군 앞에 놓인 종이컵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설 연휴를 불과 하루 앞둔 16일 새벽. 많은 이들이 고향에 간다는 설레는 마음에 한껏 부풀어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고향 대신 PC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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