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추적'', 부장판사 ''석궁사건'' 진실 추적

12년간 성균관대와 힘겨운 싸움 이은 김명호 전 교수 사건

김명호
전직 교수 김명호 씨는 왜 석궁을 들고 현직 부장판사를 찾아갔을까.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히 남은 ''석궁사건''이 벌어진 이유와, 곳곳에서 의문이 남는 이 사건의 수사 과정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찾는다.

SBS TV ''뉴스추적''은 14일 오후 11시 15분 ''전직 교수 김명호, 석궁사건의 진실은'' 편을 통해 허점이 드러난 경찰 수사와 김 전 교수가 12년간 계속해온 대학과의 싸움을 들여다본다.

김 전 교수는 지난달 15일 오후 6시 17분 석궁을 메고 박홍우 판사의 집 앞으로 가, 박 판사를 쐈다. 경찰은 그에게 살인 미수혐의를 적용해 구속했고, 법원은 이 사건을 ''사법테러''로 규정해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건발생 24일만인 지난 8일, 김 전 교수 혐의를 살인 미수에서 폭행으로 바꿔 기소했다. 뒤이어 일부 교수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규명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995년부터 12년 동안 성균관대학교를 상대로 교수지위 확인소송을 벌이는 김명호 전 교수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김 전 교수, 1995년 대입시험 오류 지적해 교수 재임용 탈락

사건 현장에 처음 출동한 송파소방서 기록에 따르면 박 판사의 초기 상처는 0.5cm다. 하지만 1차 응급진료가 진행된 서울의료원 기록에서 상처는 폭 0.8cm, 깊이 2cm로 늘어났고 경찰은 서울대병원 자료를 인용한 최종 발표에서 상처 규모를 폭 2cm, 길이 1.5cm로 확정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서에 ''김 전 교수가 석궁을 겨냥해 쐈다''고 기록했지만 박 판사는 얼마 후 "사건의 정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석궁사건''의 시작은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고등법원은 성균관대학교에 재직하던 김명호 교수가 수학과 대입 시험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징계와 부교수 승진 및 재임용 탈락의 원인이 됐다고 인정하면서도 교육자적 자질을 문제 삼아 임용에서 탈락시킨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교수 자질 부족의 증거 중 하나로 1995년 성균관대 수학과 4학년 38명이 서명한 건의서를 인용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서명 학생 중 14명을 만나 확인한 결과 13명은 ''건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 중 일부 학생은 대학의 서류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취재진이 만난 성균관대 A교수 역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1995년 1월 성균관대 수학과 학과장이던 A교수는 "1994년 12월 수학과 교수들 사이에서 김 전 교수가 차기 학과장으로 내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학과 입학시험 문제 오류를 지적한 1월 이후 재단 측에서 교수의 자질문제를 강하게 제시했다"고 증언했다.

문제가 된 수학문제를 기억하는 다수의 수학 관계자들은 "잘못된 가정을 증명하라는 문제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프로그램을 통해 입을 모았다.

''뉴스추적''은 이런 상황에서 김 전 교수가 대학을 상대로 12년간 힘겨운 싸움을 벌인 과정과 현직 부장판사에서 석궁을 쏘는 극단적인 범행을 벌이기까지를 자세하게 담는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른 교수 재임용과 사법제도 개혁방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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