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웅 "부도?…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인영기업 사장 문웅

한 기업인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소년이었지만 국문학과는 ''굶는 학과''라는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건설업에 뛰어든다.

IMF가 닥치고 그는 재기를 꿈꾸는 부도 기업인들의 모임인 팔기회(八起會)에 나가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는 중소기업인들과 끊임없이 함께했다.

숱한 고난을 겪은 후 3개의 기업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이 된 그는,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하겠다면서 나이 마흔다섯에 국문학과에 편입했고 예술경영학도 공부하기 시작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고 있는 주식회사 인영기업의 문웅 사장을 2일 방송될 CBS ''손숙의 아주특별한 인터뷰''에서 미리 만나보았다.

문웅
-요즘 경기가 어떠세요? 기업하시는 분들 보면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 "일각에서는 어렵다고 하고 어느 한쪽에서는 뭐가 어렵냐고들 하는데 느끼는 것은 다 다르겠지요. 그런데 제가 사업을 30여년 하면서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실감합니다. 어려울 때마다 어려울 때가 가장 기본이고 잘 될 때는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위기관리가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극한상황을 겪어보고 나니까 그런 것을 터득하게 되는데 어려울 때를 기본으로 경상비나 운영비를 잡으면 잘 될 때는 가만히 놔둬도 보너스처럼 주어지는 것이죠."

-회사는 직접 하셨나요? 아니면 어디 취직하셨다가 나중에 했나요?

▲ "저는 아직까지 월급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78년도에 직접 건설회사를 창업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78년도에는 건설업 경기가 어땠나요?

▲ "그때는 꿈을 갖는 시절이었어요. 지금은 사라져버린 율산그룹의 신선호 회장이라는 신화 같은 존재가 중동건설 붐을 일으켜서 건설업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업이었고, 제가 그분을 존경하기도 해서 건설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여건이 갖춰진 것은 아니었지만 면허부터 취득해서 건설회사를 창업하고 기업의 기역자도 모를 때부터 대표이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광주에서 사업을 3~4년 열심히 했는데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5·18의 대공황기가 불어닥쳐 그 여파가 2~3년 흘렀습니다. 그래서 기왕 사업을 하려면 큰 물에서 하자 싶어서 82년에 회사를 서울로 옮겼습니다."

경영 어려움은 기본, 잘될땐 보너스 받았다 생각

-부도가 난 적도 있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저뿐만 아니라 어려운 과정을 겪은 기업인들은 누구나 다 공감하는 것인데 신용이 추락하니까 제로상태에서 시작을 해도 시원찮을 것을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것이죠. 부도가 나거나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처삼촌 돈까지도 끌어서 써야 되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먼저 주기 때문에, 더 좋은 프로젝트가 있다 해도 다시 딛고 일어서기가 힘든 것이죠. 그래서 거기에서 재기를 하는 과정이 정말 피눈물 나는 것입니다.

제가 부도가 난 것이 부정수표 단속법 때문인데, 그 법은 법에 저촉되는 수표만 다 회수하면 다시 혐의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제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다 회수해서 은행과 다시 거래를 트고 사업을 재개한 것이죠."

-처음에 건설 회사를 시작했을 때 사람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데.

▲ "사업뿐만 아니라 모든 대인관계를 봐도 좋은 사람과 바보를 구별해줘야 되거든요. 그런데 좋다보면 사람들이 그걸 바보로 생각해요. ''저 사람이 좋으니까 내가 얼마든지 악용해도 되겠다, 이용해먹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제가 주산이 4단인데 회계장부를 보면 암산으로만 해요. 그래서 금전출납부나 총계장을 보고 암산으로 네 단위 딱딱 끊으면 이미 머릿속에 계산이 다 됩니다.


그런데 언젠가 회계를 다루는 여직원이 제가 한 번도 주산으로 검산을 안 하니까 장부를 속인 거예요. 제가 한두 번은 계산이 안 맞는 걸 넘어가고 나중에 ''현금이 이렇게 차이 나는데 금고에 돈이 있소, 아니면 은행에 돈이 있소?'' 하니까 대답을 안 하다가 그걸 조목조목 얘기하니까 그때서야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자칫 마음 약하게 먹는 기업인 극단 생각 갖기도-일화가 많을 것 같은데.

▲ "건설현장에는 이 현장에서 쓰던 자재를 저 현장으로 옮기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때 A현장에서 쓰던 자재를 B현장으로 옮기라고 했는데 B현장에서 이틀이 지났는데도 안 왔다는 거예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A현장 책임자가 그걸 빼돌린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직원이 많으니 어떤 기준이 있고 신상필벌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어야 해서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굉장히 고민했어요. 그래서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상의했더니 대번에 ''도둑질한 사람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자네 아이들도 예쁘게 크고 있는데, 도둑질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처리를 하면 나중에 여러 가지로 자네 마음이 불편할 걸세''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 책임자를 오라고 해서 둘이서만 알고 있을 테니까 10일 안에 사표를 내고 조용히 처리하자고 했지요. 그 사람도 제가 처벌을 않겠다고 하니까 그냥 사표를 냈어요. 그런데 건설업계에서는 어떤 회사에서 근무하다 다른 회사로 가려고 하면 경력증명도 떼어가야 되고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가서 취직을 해보니까 안 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다시 저한테 와서 ''사장님, 저한테 10일만 더 주십시오. 월급을 받고자 하는 건 아니고 취직을 해서 가려 하는데 거기까지만 한 번 더 배려를 해주십시오'' 하기에 그럼 출근하라고 했더니 결국 외국으로 취업을 해서 나갔어요. 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나고 제 먼 친척 한분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분이 일하는 곳의 책임자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편지 한 통 잘 써달라고 부탁 하기에 희한하고 신기하다 하면서 편지를 장황하게 써서 보냈지요. 그랬더니 정말 고맙게도 한 달 후에 제 친척분이 좋은 직책을 맡았어요(웃음).

그 후에 그분이 다시 한국에 오셔서 ''그때 처리를 잘 해줘서 오히려 벌을 받는 것보다 훨씬 뼈에 사무쳤다, 당신 같은 분이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요즘도 간혹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동병상련 ''팔기회'' 참여 밤새가며 상담도 했지요

- 팔기회에서 상담도 많이 하셨다는데.

▲ "순수한 뜻으로 출발한 단체인데 큰 방직회사를 하시던 남 모 회장이라는 분이 어려움을 겪고 재기를 하셨습니다. 그처럼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일어나자고 칠전팔기라는 말에서 따온 팔기회를 만드신 것이죠. 저도 그런 어려움을 91년도에 겪고 나니까 돈을 버는 일은 아니지만 동병상련으로 자비를 들여가며 참가를 했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처럼 중소기업이 어려운 때가 없었어요. 그래서 부도도 연쇄적으로 일어나니 자칫 마음을 약하게 먹는 기업인들이 자살하는 경우도 많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상담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으신가요?

▲ "충청도 어디에 모터제조회사 사장이 계셨는데, 굉장히 성격이 급하고 욱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여러 가지 다 해봤지만 도저히 안 되었다며 ''끝내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세상을 뜬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거기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내려가 직접 만나서 말했습니다. ''당신보다 나는 훨씬 더 험한 일을 다 겪었다. 당신 혼자만의, 기업인으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고 아이들한테는 아빠고 부모에게는 자식이다.

그런데 당신 혼자 간다면 그 많은 짐을 부인이 떠안는다. 자식들이 떠안는다. 유산은 못 물려줄 망정 가족에게 자살한 아버지를 뒀다는 치명적인 가문을 남겨야겠느냐''며 밤새 설득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재기하라며 격려하고 계속 사후관리를 해드렸는데, 그분이 나중에 정말 재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자기가 키운 분재를 하나 가지고 오셨는데 지금도 제 집에서 소중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 "지금의 삶을 그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죠.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제 공부가 있는데 이미 제 안에 형식은 잡혀 있으니 내용을 더 채워서 정말 학생들한테 예술경영학을 바로 가르치는 좋은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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