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환자들이 대리전에 나선 것 같은 공허함 때문이다. 고법 판결 이틀 뒤 인천에서는 고엽제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경인일보는 40년 질곡의 세월로 점철된 고엽제 후유증 문제를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해병 청룡부대 소속으로 67년 6월 베트남에 파병돼 지난 68년 10월 귀국한 인천시 남구 용현2동 원춘식(59)씨. 베트남전에서 원씨는 월맹군의 주요 해상 침투로인 추라이(Chu Lai) 지구와 다낭 외곽의 호이안 (Hoi An)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밤에 매복 근무를 하다보면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요. 얼마 뒤엔 안개같은 뿌연 이슬이 내려오죠. 우리는 모기약을 뿌려주는구나 하고 철모를 벗고 온 몸에 맞았습니다. 야간에 매복을 나가면 모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춥고해서 사람한테 많이 달려드는데 우리를 생각해 모기약을 뿌려주니 고맙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1주일 지나 그 자리에 가보면 나무가 말라가요."
귀국 후 1973년 중사로 제대한 원씨는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92년 회사로부터 퇴출당했다. 기계체조로 단련된 몸이라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제대하고 부터 잦은 감기에 시달렸다. 80년 후반이 되니 몸이 간지럽고 이가 빠졌다. 90년초에는 운동을 못할 정도로 다리가 아파 계단을 오르다 갑자기 주저앉기도 했다.
병원에서 말초신경염 진단을 받았다. 말초신경병은 고엽제 후유증 환자로 분류되지만 말초신경염은 비대상이다. 직장 신체검사에서 당뇨병과 고혈압도 발견됐다. 결국 원씨는 92년 직장에서 퇴출됐다. 건강상의 이유로 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원씨, 수년 노력 끝에 1999년 고엽제 후유의증 (경도장애) 판정을 받았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58만명(8개 부대). 1993년 관련 법률이 제정된 뒤 지난해 말 고엽제 환자는 10여 만명이 됐다. 인천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고있는 고엽제 환자는 2천298명(고엽제 후유증 964명, 후유의증 1천333명, 2세 환자 1명). 여기에 장애 정도가 낮은 등외자 2천634명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고엽제 피해자는 5천명에 달한다.
"우리는 용병이 아닌 참전용사"라며 명예회복을 외치고 있는 이들은 병마와 정부의 높은 장벽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