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미(48)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
''빙글빙글'',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나미는 1980~1990년대 ''섹시 퀸'' 자리를 지켰다. 요즘은 섹시미를 내세운 이들이 많지만 당시 현란한 춤솜씨와 수준급 가창력을 겸비한 나미는 여가수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1990년대 초 ''인디언 인형처럼''을 끝으로 무대를 떠난 나미의 이름이 2~3년 전부터 매스컴에 다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들 정철(23)이 가수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다.
2장의 음반을 발표한 정철이 1년 만에 싱글 ''이프 아이 쿠드(If I Could)''를 발표했다. 한층 성숙한 정철의 가창력이 담긴 이 노래에서 나미는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아들과 어머니의 듀엣은 흔치 않은 시도다.
좀처럼 한 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나미, 정철 모자(母子)를 이들의 서초동 집에서 만났다. 화려한 무대를 떠나있던 지난 15년동안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주부로 생활한 나미의 손길이 곳곳에 깃든 집은 따뜻함이 가득했다.
매스컴의 주목을 꺼리면서 아내와 엄마 역할에만 충실하고 싶던 나미가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은 이유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묘했어요. ''이 노래라면 불러 보고싶다''고 생각하던 중에 아들이 함께 불러보자고 제안했죠(나미)"
솔직히 나미의 마음을 흔든 건 곡보다 아들이었다. 미국 유명 작곡가 데이몬 샤프가 작곡한 이 노래에 때마침 여자 가수의 도움이 필요했고 음반 프로듀서를 맡은 작곡가 MGR은 ''가까이서 찾자''면서 나미를 추천했다.
쉬는 동안 여러 가수로부터 피처링 제의를 받았고, 음반을 발표하자는 제안도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던 나미는 아들의 부탁만은 뿌리치지 못했다. 여기에는 1, 2집보다 성장한 정철의 가창력과 부진했던 그동안의 성적을 말없이 이겨낸 아들의 인내를 지켜본 어머니의 마음이 작용했다.
"인생 길에서 아들과 한 곳에서 만나는 듯 한 느낌이에요"라고 말하는 나미와, "녹음 뒤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어요"라는 정철은 이번 작업을 만족해하지만 "엄마와 아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노래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노래할 때는 엄마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기는 난처하잖아요(웃음). 서로 다른 길을 가다 만난 것처럼 대했죠(정철)."
"노래에서 말하는 사랑은 가족의 사랑일 수도 있으니까 저는 오히려 편안하게 불렀어요(나미)."
어머니의 도움은 정철에게 큰 힘이 됐다. 가창력은 부족함이 없지만 그동안 대중에게 만족스러운 사랑을 받지 못한 정철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전혀 새로운 기억에 덮히는 것 같아요"라며 의미를 더했다.
아들과의 듀엣은 나미에게도 소중한 추억이다. "마음속으로 노래를 차단했지만 아들이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가 없었을텐데 묘한 기분"이라고 했다.
"2세 연예인 수식, 더는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모자의 호흡은 긍정적 효과로 이어졌지만 정철에게는 또 한 번 ''2세 연예인''이란 넘어야할 수식어를 남겼다. 3년간 비슷한 말을 들어온 정철은 "더는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아요"라면서 "몸으로 느끼더라도 이제는 부르고 싶은 노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는 속내를 비췄다.
''2세 연예인''은 보이지 않는 특혜를 받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손해도 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한 번도 먹지 못했어요. 할머니, 이모들이 저를 돌봐줬는데 엄마는 아침 일찍 진하게 화장하고 집을 나가면 돌아올 때는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어요. 등 한번 토닥여주는 게 전부였죠. 초등학생이 된 뒤에야 엄마가 가수인걸 알았는데 그 때도 친구들 엄마는 모두 TV에 나오는 줄 알았어요(웃음)"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 나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더는 두 가지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엄마 역할만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무대를 떠났죠. 마음 속으로 노래를 막았지만 늦둥이(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아들 정환군)를 낳고서 ''다시 나가볼까'' 유혹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정환이가 ''엄마'' 하고 부르면 금방 잊어버렸어요."
유년기 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듀엣으로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기를 바라는 나미와, 어머니의 선택이 쉽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정철은 노랫 속 가사처럼 대중에게 따스한 눈길을 받을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