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오늘 <시사자키가 만난 사람>에서는 친일 진상을 밝히는 것이 소원인 노 독립 투사 한 분을 모셨습니다.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파 사건에 주역이시고, 현재 <민족 문제 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입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
-독립운동가라고 소개해드려야겠는데요. 오늘이 7월 24일이니까 꼭 59년 되는 날이네요. 해방이 불과 한 달도 채 안 남은 1945년 7월 24일 바로 오늘로부터 꼭 59년 전에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건이 있었죠. 부민관 폭파 사건의 주역이신데요.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신가요.
◑조문기 이사장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것은 생각을 안하고 사니까. 근데 제가 평소에 명색이 독립운동 했다는 사람으로서 바라던 독립이 됐으면 그 날이 되면 감회가 새롭고 그 날에 대해서 어떤 의미 같은 것을 부여하려고도 하겠는데 바라던 그런 독립이 안 되다 보니까 제가 하던 일이 자랑스럽게도 생각이 안 되고 그래서 별로 의식을 안하고 살고 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
-그 때 대표적인 친일파 박춘금이라고 있었죠. 일제 시대 때 조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도 두 번 했고, 그 친일파 박춘금이가 7월 24일 날 부민관에서 대의당이라는 정당을 결성했고, 그 대의당이라는 것은 항일 조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요. 그 박춘금 일당을 응징하기 위해서 부민관에 폭탄을 설치하셨던 것 아닙니까? 그 때 세 분이 하셨죠?
◑조문기 이사장
''''유만수, 강윤국 그렇게 셋이죠. 한 사람은 돌아갔고. 강윤국 동지는 아직 살아있는데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에요.''''
◎ 사회/정범구 박사
-그 전에 나석주 의사의 척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이라든가 여러 번 있었지만 성공한 적이 많지 않았단 말이예요. 그런데 부민관 에서는 폭탄이 실제로 터져서 상당히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는데요. 그 폭탄을 직접 만드셔서 부민관 내부에 설치하셨던 건가요?
◑조문기 이사장
''''사제 시한폭탄을 만들었죠. 두 군데다 장치해서 폭파 시켰는데, 참...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참...감격스럽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사 전반이 다 그렇지만 특히 조그만한 저의 이야기도 아주 구구각색으로 전달이 됐어요.
저희 사건 같은 것은 8.1 5직전이고, 공개 석상에서 있었던 일인데 소위 독립운동사라는 책들을 보면 전부 다 달라요.
우리나라에 소위 독립운동사를 전공했다는 양반들이 그만큼 무책임했던 거죠. 사실에 충실하려고 하는 어떤 역사의식 같은 것이 없고, 그저 아무렇게나 써내면 끝나는 것으로.
그래서 얼마 전에 어디다가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전부 망쳐놨다''''고 썼어요. 하루 전에 미리 잠복하고 있었다, 그 날 아침에 들어가서 기관실에 숨어있었다, 또 그 시간에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고 가지각색으로.
저같이 살아있는 사람 이야기인데도 구구각색으로 나오면 어느 것이 진짜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것 아닙니까? 저한테 전화 한 마디만 하면 끝나는 건데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무책임해요. 또 쓰는 양반들이 대개 저를 안다구요.
그 양반들이 그런 식으로 쓰다 보니까 우리나라 전체 독립운동사가 다 그래요. 독립운동사라고 거창하게 만들어 놓은 책이 수 백권 있지만 그건 전부 잡지다, 역사로서 소중한 가치가 없는 책들이라고 제가 지탄해 버렸어요.
그래서 이 양반들이 나를 많이 욕하겠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학자 중에 몇 사람은 제게 격려 전화를 했어요. 아주 후련하고 시원하다고. 그래서 당신은 내게 욕을 먹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했더니 선생이 이야기하는데 누가 욕을 합니까 그러더군요. 진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 사회/정범구 박사
-부민관 폭파 사건 상황을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잠시 설명해 주시죠. 그 날 행사는 저녁에 있었죠. 당시 만주국 쪽에서도 오고 중국의 왕정위 괴뢰 정권의 사절들도 왔구요.
◑조문기 이사장
''''일본을 맹주로 하고 있는 동남아라든가 몇 개 괴뢰 국가 정권 대표들이 참석했었고, 또 단상에는 총독이다 왕이다 다 나와 있었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폭탄은 어디에다 설치를 하셨던 겁니까?
◑조문기 이사장
''''하나는 현관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어져서 복도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요. 객석 들어가는 첫 번째 문, 거기 들어가서 벽 밑에 하나 놨고, 또 하나는 복도 끄트머리 무대 올라가는 계단 밑에 하나 장치했죠.''''
◎ 사회/정범구 박사
-그 때 다이너마이트를 구해서 도화선을 연결해서 했다고 하던데요.
◑조문기 이사장
''''솔직하게 말하면 탄광에서 노동자로 들어가서 도둑질해서 모은 건데, 광산에서 쓰는 다이너마이트를 훔쳐다 놓긴 했는데 쓸모가 없더라구요. 사제 시한폭탄을 만들어서 장치하는데 도화선이라는 것이 손가락만한 굵기이고 또 그 끄트머리에 불을 붙이면 막 냄새도 나고 불꽃이 튀면서 타들어가거든요.
그런 것을 갖다 놓으면 단박 들키고 말아요. 그러니까 다이너마이트 속에는 도화선이고, 다이너마이트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명주실이 나오도록 만든 거죠. 딱 한 오라기가 아주 가늘죠.
그 끄트머리에 불을 붙여서 앞에서 타들어가 봤자 눈에 뵈지가 않아요. 그렇게 장치를 했는데 정확하게 터졌어요. 우리는 폭파 전문가도 아닌데 하늘이 도왔나 봐요. 완벽하게 계획대로 정확한 그 시간에 터졌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조문기 이사장
''''정확한 진상은 저희도 몰라요. 보도 통제를 했기 때문에. 일본 놈들은 기록이 있을 텐데 다 싸가지고 갔는지, 여기 있는데 이 사람들이 안 내놓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8.15 이전에는 발표가 안 되니까 몰랐죠. 저도 궁금해서 국립 도서관에 가서 뒤져 보니까 ''''몇 시 몇 분에 해산됐다''''고 조그맣게 났더라구요.
그런데 그 전에 한 25일 동안 그 행사를 홍보하느라 서울 거리에 커다란 벽보가 나붙고 라디오 뉴스 시간에 계속 방송해 대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제대로 불상사가 없이 끝났으면 엄청나게 대성황을 이뤘다고 보도했겠죠.''''
◎ 사회/정범구 박사
-현장에서 명주실에 불을 붙이고 바로 도망을 나오셨나요?
◑조문기 이사장
''''그렇죠. 바로 나왔죠. 지체하면 큰일 나죠. 딱 3분 걸렸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일제 말기니까 거의 일제 마지막 발악 시점이었을 텐데 나오셔서는 어디로 도망 가셨나요?
◑조문기 이사장
''''길 건너 지금 서울 시청이죠. 그 때는 시청 주위에 나지막한 울타리가 있었어요. 거기에 나란히 앉아서 시간 보고 있었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폭발음을 들으셨어요?
◑조문기 이사장
''''그렇죠. 별안간에 꽝꽝하고 폭발을 하니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전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거죠. 지금 짐작하기로는 부녀자들이나 노인층들은 아마 밟혀서 많이 희생됐을 것 같아요. 8.15 이후 나온 보도를 보니까 얼마가 죽었다, 부상당했다고 나오는데 전부 달라요. 그러니까 진상을 모르는 거죠.''''
◎ 사회/정범구 박사
-박춘금이는 그 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조문기 이사장
''''8.15 이후에 며칠 있다가 동경으로 도망갔죠.''''
◎ 사회/정범구 박사
-일본에서 최후를 마쳤습니까?
◑조문기 이사장
''''그렇죠. 일본으로 도망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과 어떻게 해서 영세 중립 국가 만든다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가 봐요. 그런데 그 뒤에 그것도 성사가 안 되고 성묘 온다고 우리나라 왔는데, 어느 신문사 기자가 저에게 ''''박춘금이 온다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묻길래 몇마디 했더니 놀라서 그냥 도망가 버렸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어수룩한 시절이군요. 박춘금 같은 친일파가 해방된 조국에 뻔뻔하게 들어오려고 했다는 건데요.
◑조문기 이사장
''''박춘금이 성덕비가 그 고향 밀양에 얼마 전까지 있었습니다. 재작년에 MBC에서 한번 저를 끌고 현장에 가봤는데 성덕비에 비문 새긴 것을 보니까 전부 친일한 경력이에요. 다른 것 하나도 없어요. 일제에 충성한 것이 전부에요. 실제로 그것 밖에 없으니까. 그걸 성덕비라고 세워놨어요. 그래서 금년 초에 저희 연구소 부산 지부에서 서둘러 헐었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부민관 폭파사건을 주도하실 때 연세가 어떻게 되셨죠?
◑조문기 이사장
''''열 아홉이었죠''''
◎ 사회/정범구 박사
-그럼 해방 후에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조문기 이사장
''''해방 후에는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정말 철없이 보냈어요. 해방 이후에 계룡산으로 갔어요. 서울을 영 떠난 건데 영 떠나서 산에서 다 잊어버리고 살다가 부장 집에 와서 신문을 보니까 선거가 있다는 거에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민주 선거라는 것을 한다니까 어떻게 하는 건가 궁금해서 그 구경한다고 선거 무렵에 서울에 올라오니까 사람들이 선거를 방해해야 한다고 해요. 명색이 독립운동 했다는 사람들이 나라가 완전히 둘로 쪼개지는 데 방조할 수 없지 않느냐, 이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범선생이나 뭐 이런 양반들이 남북 협상 하러 가고 백범 선생도 만났어요. 내가 믿는 존경하는 선배 어른들이 협상하러 그러니까 좀 과격한 방법으로 방해했어요. 그 바람에 한 1년 반을 징역 살았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친일진상규명법이 올 초에 1차 통과됐습니다만, 부실하게 통과됐다고 해서 국회에서 다시 개정안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개정안 내용은 보셨죠? 개정안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는지요?
◑조문기 이사장
''''아니요. 만족은 할 수 없구요. 참고 봅니다. 그 이상 우리가 힘이 없으니까 애써하는 양반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그것인데 그것 가지고 또 시비를 할 수도 없는 거고. 먼젓번엔 너무 어처구니없는 것을 만들어 놓으니까 우리 연구소가 앞장 서서 문제 제기를 한거죠.''''
◎ 사회/정범구 박사
-16대 때 통과된 법안에서 특히 어떤 점들을 참을 수 없으셨습니까?
◑조문기 이사장
''''그건 친일파 청산하자는 게 아니죠. 청산하는 시늉도 아니고, 아무것도 청산된 게 없어요. 정말 청산해야 할 사람들 다 빼 놓고서 그저 몇 사람 청산한다고 하는 것은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래 놓고 거기 해당 안 되는 사람들 전부 면죄부 주고 말이죠.
지금 친일 인명 사전 발간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데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우리가 할 일도 못하게 만들어 놓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안 된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
-그런데 친일파 청산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해방된 지 60년 됐고, 옛날 친일파들 다 죽어서 남아 있지도 않은데 언제까지 친일파 청산할거냐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조문기 이사장
''''그런 소리를 들으면 아주 억장이 무너져요. 60년 아니라 600년이라도 안 했으면 빨리 해야죠.
지금 종양이 막 썩어들어가는데 창피하다고 우선 눈가림하기 위해서 안 보이게 덮어만 둔다? 그 속에서 막 썩어들어가서 육신 전체가 죽고 말텐데 민족을 영영 죽이자는 이야기인가, 아무리 괴롭더라도 종양을 도려내야죠. 그래야 민족을 살리지 어떻게 썩어들어가는 종양을 숨겨놓고 이렇게 끝내려고 합니까?''''
◎ 사회/정범구 박사
-과거에 친일을 했거나 또는 별 생각 없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도 해요. 그 시대에 언제 조선이 독립될 줄 알았냐, 다 일제 하에서 먹고 살자고 한 짓이지 이런 이야기도 하거든요.
◑조문기 이사장
''''저는 요즘에요. 심야 프로를 안 보기로 했어요. 지금 심야 프로는 언제나 찬반 양쪽 동수로 나와서 이야기하대요. 그런데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 쪽은 말 할 것도 없고, 친일파 청산을 해야 한다고 하는 여당 쪽에서 나온 패널들도 자기도 모르게 친일 논리에 푹 빠져 있어요.
이것을 언제까지 골치 아프게 끌고 갈거냐는 사람, 덮어두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당시에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딨고, 독립운동가 아닌 사람이 어딨냐, 먹고 살기위해서 할 수 없이 했지 친일하고 싶어 했냐고 하는데 8.15 직후 같으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수 있었겠습니까? 완전히 친일 논리에 푹 빠져 있는 거에요. 그러면 결론적으로 친일파나 독립운동가나 다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되 버린다고. 그거 보면 아주 열이 치밀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흔히 하는 말로 친일파 자손은 3대가 떵떵거리고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은 3대가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직접 주변에서도 그런 것 많이 보셨습니까?
◑조문기 이사장
''''해서는 안될 말이지만, 독립운동 했다는 양반들이 우리 자식들한테는 독립운동만은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고 하는 양반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래요. 독립운동가들 예우가 이게 뭐냐 연금이 이게 뭐냐 불평하는 양반들 많이 있는데, 저는 그럽니다.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쇼 연금 타기 위해서 예우 받으려고 독립운동했소? 우리가 바라는 그런 독립이 안됐는데, 친일파 천국인데, 온 나라가 친일파 동상이다 기념비다 아주 뒤집어쓰고 있는 판에 이런 친일천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밥 안 굶고 감옥에 안 들어가 있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무슨 예우 타령을 하느냐고 내가 앙탈부리죠.''''
◎ 사회/정범구 박사
-친일 인명 사전 발간 관련 예산이 국회에서 다 삭감됐다고 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네티즌들이 열화와 같은 모금을 했었는데요. 그 때 얼마나 모였습니까?
◑조문기 이사장
''''당시에는 한 6억 정도가 모였고, 8.15까지 5억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불과 십여일만에 5억이 돌파됐죠. 5억 목표 달성했으니까 끝낸다는 기자회견도 했는데, 그 이후에도 한 2~3억이 더 들어와서 한 8억 정도 됐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그 때 네티즌들의 호응을 보고 어떻게 느끼셨어요?
◑조문기 이사장
''''저는 그 사람들이 다 독립군으로 보였어요. 새로운 독립군이고 제2의 독립운동이다, 그들이 주는 돈은 전부다 독립군 군자금이다.''''
◎ 사회/정범구 박사
-지금 사전 발간 작업이 어느 정도 돼 있습니까?
◑조문기 이사장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네티즌들 덕분에 자금이 확보됐으니까 우리 계획대로 아주 순조롭게. 그리고 그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열의가 보통이 아니에요.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고, 그렇게 고마울 수 없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인명 사전은 몇 권으로 계획을 하고 계십니까?
◑조문기 이사장
''''최소한 20~30권 사이를 예상하고 있는데 당초 계획을 세울 때는 돈이 없다 보니까 줄인 거에요. 자금이 있으면 더 늘어날 수 있어요. 외부에 있는 자료들을 전혀 못 가져오니까 뻔히 어디가면 뭐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돈이 없어 손을 못대잖아요. 충분히 자금이 된다고 하면 그런 것 더 가지고 올 수 도 있거든요. 더 늘어날 수 있겠죠.''''
◎ 사회/정범구 박사
-현재까지는 몇 권이 나왔나요?
◑조문기 이사장
''''지금은 친일파 인명 사전이 아니라 준비 작업이죠. 그런데 책은 많이 나오고 있어요. 두꺼운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국내 국외 별로 일제 통치 기관을 비롯해서 공공 기관들의 총람. 말하자면 거기 인원이 다 들어가 있는 거죠. 민간 단체는 또 따로 수집을 하구요. 그 자료가 원체 방대해요.
지금 국회에서 특별법 가지고 몇 천명이다 어쩐다 하는데 사실 웃기는 이야기에요. 어떻게 우리나라에 친일파가 몇 백 명, 몇 천명 밖에 안됩니까? 외국의 경우에 불과 3~4년 동안 당한 나라에서도 민족 반역자들을 몇 만 명씩 몇 십 만 명씩 처벌하는데 50년 동안 당한 나라에서 친일파들이 몇 천명, 몇 만명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는 최대한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는 거에요. 다 친일파 숙청 대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전부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는 거에요.''''
◎ 사회/정범구 박사
-친일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 해주시죠.
◑조문기 이사장
''''이번 특별법을 통해서 친일파 청산이 된다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계기가 되서 잠자고 있는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데 뜻을 두면 된다, 정말 준비해야 하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구나 이렇게 국민들이 자각할 수만 있다면 큰 성과라고 봅니다.''''
▶진행:정범구박사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98.1MHz 월~토 오후 7시~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