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의 매력은 바로 그러한 객관적 시각에 있다.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지독한 균형감을 가진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이 바로 그의 매력인 듯 싶다.
우리 시대 이야기꾼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을 영화화 했다. 임상수 감독은 80년대를 통찰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직접 쓰지 않고 ''오래된 정원''을 대본으로 삼았다. 왜? "80년대를 누구보다 직접 경험한 386세대지만 이 소설만큼 잘 표현한 시나리오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81학번 임상수, 그 시대 사랑을 오늘에 변주하다
임상수 감독은 사회학을 전공한 81학번으로 소위 80년대 뜨거운 시대를 살았던 386세대다. 정작 그는 비운동권 학생이었단다. "80년대는 러브스토리 즉 멜로로 그려보고 싶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정치적 이야기로 풀어갔고 ''바람난 가족''이 90년대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면 분명 80년대는 또 어떤 특성을 담아야 하는데 멜로를 주된 테마로 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그때 그 사람들''이 끝난 직후 ''오래된 정원''에 착수하게 됐고 멜로영화를 하되 쉽고 뻔하게 울리는 연출은 피하면서 더 가슴 아픈 효과를 얻고 싶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투사, 자칭 사회주의자 현우(지진희)와 그의 도피처를 제공해주는 시골 미술교사 한윤희(염정아).이들의 6개월간의 짧고 강렬한 사랑이야기가 2007년을 사는 오늘에까지 손을 뻗는다. 어찌보면 현우는 80년대를 대변하는 인물이고 윤희는 오늘을 사는 현실적인 감각이 충만한 감독의 페르소나다.
"당시에 주인공들도 실생활을 사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터인데 어떻게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 시대 분위기가 허접한 일상을 사는 개인의 삶을 무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
그래서 한윤희의 관점이 중요해 보인다. 분신 자살을 하는 공단 위장 취업 대학생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뜨거웠을까''하고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나 또다른 후배 운동권 학생 주영작의 학생운동에 대해 무모해 보이는 의욕을 따금하게 꼬집는 것도 역시 감독의 80년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녹아 있는 것이다.
지진희-염정아 아직 안뽑아 쓴 연기내공 끄집어내
임상수 감독은 자신의 작품들에서 봉태규를 발굴했고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관객에게 검증시켰다. ''그때 그 사람들''의 백윤식도 비로소 영화 배우로서 재 가동 시키는 역할을 했다. 물론 문소리와 설경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에는 지진희와 염정아다. 그들에게서 색다른 멜로의 모습을 입혔다.
"지진희 씨는 그동안 알려진 것에 비해 딱히 이게 내거다 싶은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현우 역할을 하면서 색깔의 분명함을 끄집어 냈다고 본다. 염정아 씨의 경우는 작품이 많고 경험이 오래됐지만 그가 가진 매력이 온전히 보여졌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이 할 수 있는 멜로의 모습을 이번에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장 염정아 스러운 멜로와 가장 멜로적 이미지를 가진 지진희의 변주된 멜로가 도드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사랑은 시대적 분위기가 영향을 주는 것도 있지만 속으로 흐느끼게 하는 먹먹함이 있다.
난 프랑스로 간다
영화의 가제는 ''파리의 어떤 한 여자''다. 프랑스에 오랫 동안 유학 중인 한국 여성이 백인 남성들을 성관계를 미끼로 등치면서 살아간다는 역시 코미디 장르가 될 예정이다.
그는 ''''유럽 남자들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환상을 소재로 인종적인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웃기면서도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이 결정되면 국내 개봉을 위해 한국 영화사도 투자자로 함께 참여할 예정이라고 그는 밝혔다. 프랑스어를 잘하는 한국인 여주인공이 필요한 상황이라 어떤 배우에게 의뢰해 놓았지만 프랑스어를 잘해야 하는 상황인지로 아무래도 현지에서 교포 배우를 섭외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연출하는 한국인 감독 1순위에 오른 임상수 감독. 그에게 마흔 네살의 나이는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는 제2의 청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