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규의 싱싱영어]''konglish''의 악순환

"독도 인근 해상에 보물선이 있다는데 혹시 아시는 것 없으세요?" 어느 토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중 받은 다급한 전화였다.

난파를 당한 배에 실린 골동품이나 금괴를 전문적으로 발굴하는 한 미국기업에서 온 전화였다.

"보물선이라면 혹시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해상에서 침몰당한 러시아군함 돈스코이호 말씀이신가요? 우리정부도 위치는 파악했지만 수압이 너무 높아 발굴이 불가능하다는데요" 필자의 이런 설명에도 이 미국인은 얼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필자의 말을 현지인이 잘 알아듣지 못한 이유는 다름아닌 영어문장의 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말은 수압, 기압 같은 단위를 주어로 해서 문장을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Water pressure is too high''라고 말하면 미국인들은 일단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높다라는 말 자체가 사물의 높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자의 '' Konglish''가 다시 한번 들통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럼 이런 표현을 어떻게 적절하게 쓸 수 있을까? 압력이라는 것은 밀도가 강한 물질일수록 높은 법이다.

차라리 ''Water is denser than air(물이 공기보다 진하다)''라고 말했으면 더 잘 이해했을 것이다.

커피맛이 진하다는 표현 어디에도 맛이라는 표현은 없다.


그냥 ''Coffee is too strong''이라고 한다.

이처럼 영어는 우리가 수치나 정도를 의미하는 말을 주어로 사용할 때 그 사물의 속성 자체를 중시해 물질을 그대로 주어로 등장시킨다.

그럼, 수치를 나타내는 말은 전혀 쓰이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사물의 성질 정도를 측정하는 단위는 목적어로 등장한다.

비행사들이 고도를 잃고 추락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We are losing the altitude(고도를 잃고 있다)"이다.

이 말은 이제 우리말에도 그런대로 정착을 한 모양인데 원래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옮긴 문장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기억하기 바란다.

영어에서 주어는 사물의 본질을 의미하고 목적어는 정도를 상징하는 말이 들어와야 영어다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 영어교육에서 기본이라는 주어+동사 구조를 아무리 공부해도 정작 이 주어에 무엇이 오고 동사나 목적어에 어떤 말이 들어오는지를 가르치지 않으면 Konglish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14일자 35면 기사의 제목 ''주어를 가르쳐준 미국인 신부님''에서 미국인을 아일랜드인으로 바로잡습니다.

※ 이서규 통신원은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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