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종교재판, 잔혹한 사형도 고문도 없었다


중세시대 새로운 사상이나 발명을 한 사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종교재판이 사실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는 달리 그다지 잔혹하지는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6일 BBC방송 인터넷판에 따르면 로마 교황청의 의뢰를 받아 6년간 종교재판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이탈리아 역사학자 아고스티노 보로메오는 ''''잔혹하게 사람을 산채로 화형에 처했다는 종교재판의 기록을 조사한 결과 사실 그렇게 잔인한 형벌은 받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교황 특별지시로 800페이지 달하는 보고서 나와

지난 수백년간의 종교재판기록을 교황청이 조사하게 된 데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특별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황은 ''''지난 수백년간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악에 대한 사죄를 하기 위해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며 1633년 실제로 교회로부터 파문당했던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자 지동설을 주장한 갈리레오 갈리레이를 사면복권시켰다.

교황은 무려 8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하면서 ''''교회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사형시킨 것은 교회가 가르치는 복음을 따르지 않은 행위''''라며 사죄를 청했다.

그러나, 전임교황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는다는 바티칸의 전례에 따라 1233년 종교재판소를 처음 만든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에 대한 비난은 자제했다.

중세 종교재판관은 사립탐정

이 보고서에서 보로메오는 ''''종교재판이 가장 심했다는 스페인의 경우에도 전체 인원 가운데 사형을 당한 사람은 1.8%에 불과했다''''고 말하며 ''''실제로 심문방법이나 용의자를 검거하는 것도 전해져 내려온 전설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기존에 알려진 종교재판방식은 한 마을에서 이상한 주술을 하거나 마법을 행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종교재판관에게 제보하면 이 사람에 대한 재판이 이뤄진다. 일단 재판이 진행되면 피의자는 당연히 고문을 받고 죄를 고백해도 사형을 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 죽기 전 고백성사등을 통해 영혼을 구원받는다는 것이 이제까지 알려진 정설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에 다른 사람보다 돈이 많거나 사사로운 일로 원한을 산 사람이 이단이나 마녀에 몰려 죽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로메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교재판관은 마녀나 이단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의 제보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독자적인 수사망과 수사관들을 데리고 수사를 하는 일종의 사립탐정과 같은 일을 했다.

또, 피고에 대한 어떤 진술이라도 이전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교회로부터 파문당한 사람이 말할 경우 재판에 증거로 채택을 받지 못했다.

종교재판의 가장 큰 피해지는 스페인 아닌 독일

이번 조사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이 발견됐다면 스페인의 종교재판을 들 수 있다. 정확한 통계가 없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현대의 영화나 소설에서는 스페인의 종교재판을 가장 철저하고 엄격했던 것으로 묘사했다.

스페인의 경우 남부 안달루시아주에 많은 수의 이슬람교도가 있었고 유태인인구도 많아 15세기 통일왕조를 만든 왕실은 카톨릭을 국교로 한 국민통합정책을 벌였다. 그 경우 많은 수의 유태인, 이슬람교도는 걸림돌이 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외에 추방됐다.

또, 국가적인 차원에서 16세기 북유럽에서 발생한 신교도들의 유입을 막아야 했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만큼은 종교재판이 교황청이 아닌 스페인왕실의 감독을 받아 이뤄졌다. 그러나, 북유럽에서의 종교전쟁에 많은 수의 군인을 보냈고 신대륙에 건너간 사람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아 인구감소로 시달리던 스페인에서는 한 사람의 인구도 중요했다.

결국 종교재판으로 인한 사형은 최대한 자제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스페인에서 종교재판으로 사형당한 사람은 전체 재판 12만 5000건 가운데 사형판결이 난 경우는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의 경우 신구교가 잘 어울려 사는 오늘날과는 달리 무려 2만 5000명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일부, 네덜란드등을 포함한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던 작은 나라 리히텐스타인에서는 전체인구 10%인 300명이 악마를 숭배한다는 이유로 숨졌다.

또,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산채로 화형에 처하는 형벌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궐석재판의 경우 사형선고가 떨어져도 인형을 대신 태우는 식이고 피고가 사형을 당할 경우 먼저 교수형을 시켜 숨지게 한 뒤 시신만 태우기도 했다.

''''인류는 역사의 교훈 몰라''''-이라크 포로학대 미군과 종교재판 다를 것 없어

그러나, 이런 보고서에 대한 의구심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당시 종교재판의 주요 희생자였던 프랑스 발도파 신교도 교회소속으로 로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목사 토머스 노프키는 ''''종교재판의 문제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으니 죽으라는 식의 재판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발도파는 초기 예배에서 자연과 함께 한다는 개념에서 남녀가 옷을 벗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 이단으로 몰렸지만 미국에 건너가 퀘이커교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미국 카톨릭교회의 로저 에치개레이추기경은 ''''역사는 인간에게 교훈을 주지만 우리는 그 교훈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군의 포로학대와 고문역시 중세시대 우리가 저지른 과오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이서규기자 wangsob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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