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로환, 일본의 러시아 정복 의미?

약국


▶ 진행 : 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서해성 교수(한신대)


******************** 이하 방송 내용 ********************


- 질병이란 무엇인가? 특히 전염병은?

- 바이러스 세균 박테리아 등에 의해 옮는 질병이란 병원균이라 부르는 생물체와 사람이라는 숙주 사이의 갈등 혹은 적응과정에 파생하는 일이다. 이때 고통이나 죽음이 뒤따르게 된다. 당연히 인간은 이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여전히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대개 병원균은 숙주 자체를 소멸시키고자 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럴 경우 자신도 죽기 때문이다.

전염병은 단지 병원균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좀 더 복잡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요컨대 병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병리학적 조건과 밀접한 조건이 성립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일단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활동하거나 살 때 집약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 전염병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게 있는지?

- 불과 20년 전만 해도 수인성 전염병에 대한 홍보가 여름방학 식의 주된 내용이었다. 당연히 병원균 매개체로 간주되는 파리 모기에 대한 ''과장된'' 주의사항이 유인물로 배포되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여름이면 예방주사, 봄이면 회충약을 먹느라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가던 일을 어찌 있겠는가. 채변봉투는 그 중에 압권이었다. 끓인 보리차가 문명을 상징하던 시대였다.

-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 봉건사회에서 질병 역병 따위는 국가관리가 사실상 전무했다. 일반 백성은 역병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고 따라서 (원시)종교적 주술적 치료체계에 의지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을 따질 때도 대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이른바 7대, 8대, 10대 환란을 피할 수 있는 곳인데 그 중에서 으뜸이 바로 역병을 피할 수 있는 자리였다. 병을 피할 수 없다면 이미 명당도 무엇도 아닌 까닭이다.

역병을 퇴치할 수 있다거나 역병에 대한 국가적 관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의가 집약된다. 하나는 문명 내지는 개화나 위생, 의료관념의 등장이다. 이는 식민지배의 정당화와 국가 중심의 육체관리를 상징하는 선언이었다. 그 다른 한 축에 체력은 국력이 존재하고 있다. 역병에 걸리는 것을 국가가 방치해야 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근대국가들은 시민이나 국민의 ''몸''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은 개별화된 육체의 의미를 국가에 종속시키는 파시즘적 태도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도구화된 신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신체적 의미에서 근대의 출발은 단발령(1895)이었다. 단발령을 내린 이념적 내용은 보건위생이었다. 자르지 않는 긴 머리를 관 속에 보관하는 것은 非보건의 온상으로 간주되었다. 언제나 근대논리는 이런 식으로 대중에게 강제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발령은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반도로 옮아온 것이었다. 일종의 문명, 개화''질병''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조선의 전통을 거세해버리고자 하는 것이 실질적 의도였다.

우두 치료(1879)를 처음 한 지석영이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일본군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언급해두고자 한다.

-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발령부터 역사를 짚어 가는 셈이 되었다. 20세기 초반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 특정 약품을 말하고자 하는 뜻은 전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가 상용하고 있는 정로환 이야기다.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 행사, 그리고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러일 전쟁(1904년 2월~1905년 9월)에서 일본은 만주 일대에서 배탈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수질 오염이나 오염된 물을 마신 까닭이었다. 이에 일왕의 칙령으로 다이코신약이 만들게 된 게 설사약 정로환이다. 이 때 정이란 정복할 ''정''-친히 황제가 나아가서 치는 전쟁이 征-러시아 ''露''를 서서 정로환이라고 일왕이 이름한 것이다. 이 약을 72년에 수입해서 이름을 바를 正으로 고친 뒤 한국인이 지금까지 복용하고 있는 것이다. 러일전쟁은 한국사와 한국인의 운명을 바꾼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과 질병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은 5만8천명이 전투로 사망하고 질병으로 2만1천명이 사망했다. 이 중 5천9백 명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이는 전투와 질병관계를 역전시킨 사건이다.

(발진)티푸스로 1917년-21년 사이에 유럽과 러시아에서만 2천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서 250-300만이 사망했다. 나폴레옹은 동장군만이 아니라 티푸스로 패배했다고 봐야 한다.

이 시기에 나온 게 한국의 명약-지금은 시판하지 않고 있다-이명래고약이다. 이명래가 한방의서에다 프랑스 선교사 드비즈 신부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생약 성분에 열을 가해 약물을 태워서 고약을 추출한다. 당시 이명래 선생이 라틴어로 된 유럽의 약용식물학 책을 드비즈 신부한테 받았는데, 드비즈 신부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 있을 때 한의학을 배웠고 이명래 선생에게 비법을 전수해줬다. 이명래 선생이 여기에다 민간요법을 더해 고약을 만들었다.''

비결은 다른 살은 다치지 않게 하고 살 속에 응고된 고름만 골라 빼내는, 뿌리는 캐내는 拔根膏에 있다. 이는 지난 1백년 동안 한국민중의 피부병 화상 관절염 유선염 등 치료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양병원에 갈 수 없는 일반민중에게 이는 질병에서 복음 같은 존재였다.

- 과연 질병이 사회적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 알다시피 조선사회에서 천연두를 마마라고 했다. 병을 극존칭해서 모셔 부른 것이다. 이 병이 널리 퍼진 것은 병자호란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록에 보면 일본에 천연두를 전파한 사람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승려들을 꼽고 있다. 일본열도에서 천연두와 홍역이 널리 퍼진 시기는 750-1000년대였다. 이른바 ''역병의 시대''였다. 여행이나 문명 전파와 함께 질병은 동행하는 것이다.

호열자가 휩쓴 순조 연간의 상황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처음 평안도에서 발병한 호열자는 괴질이라 했는데 1821년(순조 21년) 죽은 이가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인구가 고작해야 1천만 명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虎列刺란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고통을 준다는 뜻이다.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정복-1518년-1520년-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은 정작 악성 천연두였다. 스페인 아메리카 인디오로 구성된 혼성군 800여 명이 쿠바를 떠나면서 질병도 함께 가지고 가서 퍼뜨렸던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아즈텍 인구의 절반이 악성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어 1531년, 45년, 64년, 76년에 걸쳐 만연된 천연두는 1천만에서 2천5백만 정도였던 ''뉴 스페인'' 인구는 17세기 초에 2백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잉카제국도 악성 천연두로 인구가 7백만에서 50만 명으로 줄었다. 라틴 아메리카 인디오들은 그렇게 사라졌던 것이다. 내성이 있던 스페인 병사들은 거의 죽지 않았다.

- 전쟁과 질병, 침략과 질병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국전쟁도 그러하지 않나. 대표적인 게 유행성출혈열 아닌가?

- 전쟁은 늘 질병을 동반한다. 전염병뿐 아니라 신경정신병도 당연히 파생시킨다. 전쟁 후 후유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리가 없다. 다만 기록이나 언급 또는 중요시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사실 내구력에 의존해야 했던 근육에 기초한 전쟁이 훨씬 더 생생하고 잔인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 시기에 유행성출혈열, 곧 유사패스트가 최초로 발생했는가 하는 문제는 미군이 한국전쟁시기에 세균전을 했는가 여부와 관계가 있다. 패스트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설치류에 의해 전염된다. 영어로 DMZ disease라하고 바이러스 이름은 한탄바이러스다 한국의 이의왕 박사가 미국으로부터 1백만 달러를 지원 받아 연구한 결과 백신을 개발했는데 유명한 한타박스다. 지금 이의왕 박사는 아주대학교 부속병원장이다.

미국이 세균전을 했는가 여부는 굉장히 논란이 되는 대목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군이 장기 주둔하는 곳에 이 질병이 거의 다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알려져 있기로는 731부대가 이 병원균을 전쟁용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마루타''들에게 실험을 했다는 증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대상은 당연히 중국인 한국인 등이었다.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이 들고 들어온 것 중에 뺄 수 없는 게 DDT라는 살충제다. 이는 미군이 2차 대전에서 큰 효과를 본 결과 한국에서 사용한 것이다. 독성 강한 DDT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37년 나온 티푸스 백신 덕분에 2차대전 기간 동안 미군 전체에서 104명의 티푸스 환자만 발생,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이른바 국제매독도 뺄 수 없다. 매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대개 유럽인들은 질병의 근원지로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를 꼽고 있다. 이는 질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다. 대규모 질병이 유럽에 널리 퍼진 것은 주로 전쟁과 도시화에 따른 결과였다. 매독 또한 마찬가지다. 이를 아메리카에 돌리는 것은 침략에 의한 아메리카 원주민 말상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파렴치한 발상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 국제매독이 널리 퍼진 것은 이른바 일본군 성노예와 미군의 한국주둔-기지촌, 그리고 베트남 전쟁이다.

독감 인플루엔자라는 것도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세계로 퍼진 것이다. 참호 속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병사들은 인류의 3대 재앙의 조건 속에 놓여 있었다. 질병 기아 전쟁. 이 독감은 전후 흑사병이래 단일 질병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세계인구의 1%가 인플루엔자로 죽어갔던 것이다.

1928년 플레밍은 오염되지 않는 배양균을 얻기 위한 실험용 방부제 ''바칠루스 인플루엔자 ''개발했으나 10년 동안 페니실린이 항생물질로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을 본인도 몰랐다.

- 이러한 역병들은 어떻게 퇴치되었나? 그리고 전망은?

- 줄여 말해 상하수도의 발달, 배설물의 별도 처리, 항생제의 개발 등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병원균들-HIV, 에볼라, SARS, 조류독감 등은 인류가 결코 전염병이나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거나 해방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흔히 사람이 병원균이라 부르는 생명체들은 근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숙주의 조건에 새롭게 적응해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퇴치가 어려운 게 단지 항생제에 내성 탓이 아님은 물론이다. 탄저병이나 비브리오 패혈증만 봐도 그렇다.

FTA 약값 협상에서 볼 수 있듯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질병치료를 극단적으로 상품화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질병이 걸린 사람에 대한 격리 내지는 유기가 안고 있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관한 것이다. 소록도 나병leprosy(Hansen''s disease)환자들의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중대한 인권 침해이자 착취였다. 이들에 대한 격리가 없어진 것은 근래의 일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인류는 끝없이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오늘날 질병의 중요한 부분은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AIDS나 에볼라-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또한 물론이다. 에이즈는 가봉 카메룬 등지에서 ''유인원 고기 거래''를 통해 사람에게 옮겨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아종 침팬지 등에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사람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인원인 사람이 유인원을 잡아먹으면서 바이러스가 숙주를 이동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서양사람들의 아프리카 침략과 그에 따른 질병의 확산, 아울러 빈곤의 확대가 HIV의 창궐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노동과 질병에 관한 부분도 뺄 수 없다. 산업형 질병은 물론 사고도 마찬가지로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돈 없고 가난한 사람, 곧 질병이 계급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단적으로 2005년만 하더라도 건설노동자 60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인류를 오랫동안 위협해온 결핵 또한 습한 조건 등이 크게 작용하지만 그보다는 근대 이후 장시간의 노동, 실직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에게 널리 발병했다는 점을 명념해두어야 한다.

- 오늘 말을 정리하면?

- 인류는 이미 자연치유에만 의존해서 살 수 없지만 결국 병에 걸린 사람 스스로가 병원이나 약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결과적이고도 궁극적으로 자연치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자연치유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삶의 조건이 자연에 가까워야만 한다.-지구 온도 2도의 상승은 말라리아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거의 지구적으로 확대시켜오고 있다.-그렇지 않는 한 병원에 의한 치유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생태적 조건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치료술의 발달은 장수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욱 커졌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가령 암은 원시시대부터 있어온 만성퇴행성질병이지만 과거에는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대개의 사람이 암에 걸릴 만큼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병 치료에 대해서만은 계급성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통에는 죽고 싶지 않은 욕망에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시장화된 의료나 약값 등이 지닌 문제점은 반드시 제고되어야 한다. 그래서 FTA에 약값만은 한국 입장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