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는 죽어서 말했다


국군포로 백종규씨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매우 특별한 여정을 걸어왔다.


이미 고인이 된 백씨의 유해는 30일 오후 딸의 품에 안긴 채 국제항공편으로 입국해 국군포로 유해송환 1호로 기록됐다.

북한에 포로로 끌려간지 53년, 숨진 뒤 7년만의 일이며 백골만 남은 유해 상태로 낯선 중국땅을 떠돈지 2년여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다시 밟게 된 것이다.

백씨는 1951년 4월 육군 5사단 근무 중 실종됐고 군은 그를 전사 처리해 반세기 이상 잊혀진 존재로 묻혀 있었다.그러던 백씨가 죽어서나마 고향에 돌아온 것은 섬뜩하다고 할 만치 절절했던 ''수구초심''에서 비롯됐다.

백씨는 1997년 사망 당시 가족들에게 시신이나마 고향인 경북 청도에 묻어달라고 당부했다.딸 영숙씨는 이런 부친의 유언 하나만을 받들어 생사를 넘나드는 북한 탈출을 몇차례나 감행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숙씨는 남편과 두 자녀와 생이별을 해야했고 자신은 중국내 폭력조직에게 인신매매까지 당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는 설명이다.

부친의 유해를 북한에서 반출하는 과정은 더욱 극적이다.영숙씨는 2001년 1차 탈북에 실패한 뒤 이듬해 4월 부친의 유해를 수습해 재탈북했지만 다시 북송돼 세번째에야 탈출에 성공했다.

이 기막힌 사연은 유해를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탈북자단체 등이 청와대 등에 전달하면서 알려지게 됐다.그동안 영숙씨는 중국공안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부친의 유해를 여행용 가방에 넣고 다니며 자나깨나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니 처절하다는 말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지경이다.

이런 사연 때문인 듯 30일 공항에는 숨진 백씨의 동생 등 남측 가족과 탈북자단체 회원, 취재진들이 성황을 이룬 채 백씨의 특별한 귀환식을 지켜봤다.정부도 군 의장대를 동원해 태극기 휘장을 감싼 유해와 영정을 앞세우고 입국시키는 예를 갖췄다.

백씨의 유해는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DNA검사가 남아있지만 이후에는 출신부대인 5사단에서 위령제를 벌인 뒤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대전 현충원 또는 경북 청도에서 영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국군포로 유해송환 1호라는 상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백씨에 대한 실질적인 예우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현행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이나 ''국군포로 송환 등에 관한 업무규정''에 따르면 살아 돌아온 포로에게만 보상 혜택이 있을 뿐 백씨처럼 유해로 돌아온 경우는 해당사항이 없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미 5년전에 관련법이 제정됐고 법에 따라 (억류지에서 태어난) 포로의 직계비속에 대한 지원이 마련돼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련 규정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는다(Not to be forgotten)''는 모토를 내걸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가에 헌신한 유공자를 찾아내 보상하는 미국의 전통은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겐 머나먼 꿈이라는 현실을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CBS정치부 홍제표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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