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 사상 최고 중견수'' 윌리 메이스와 이만수의 차이

[최민규 칼럼] ''편리함에 중독되지 않은'' 이만수 코치와 ''나를 준비한'' 윌리 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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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메이스. 그는 배리 본즈의 대부(代父)이며,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 중견수다.

1954년 월드시리즈에서 빅 워츠의 130m 타구를 잡아낸 ''''더 캐치(The Catch)''는 불멸의 수비 플레이로 손꼽힌다.

메이스는 1979년 메이저리그 선수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과 가장 불명예스러운 순간을 동시에 맞았다.

그해 1월23일 메이스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득표율 94.6%는 타이 캅, 베이브 루스, 호너스 와그너에 이어 역대 네 번째였다. 그 직후 보위 큔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메이스에게 모종의 조치를 내렸다.

바로 영구 제명. 메이저리그에서는 피트 로즈,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강혁에게 내려졌던 야구계에서 가장 가혹한 징계다.

메이스는 명예의 전당 헌액 얼마 뒤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밸리스 호텔에 그리터(Greeter, 안내인)로 고용됐다. 중요 고객들을 접대하고, 함께 골프를 치는 일이었다. ''''중요 고객''''이란, 호텔 카지노에서 돈을 잃어 줄 수 있는 손님이었다.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일어난 승부조작사건, 곧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메이저리그는 ''''도박''''이라면 진저리를 친다. 메이스가 카지노 도박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뉴저지주 주법에 따라 카지노 호텔 종사자는 근무지 반경 100마일 안에서는 도박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쿤 커미셔너는 메이스에게 ''''야구 일(당시 메이스는 뉴욕 메츠 피고용인이었다)과 호텔 일 가운데 양자택일하라''''고 요구했다.

메이스가 ''''호텔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자 쿤 커미셔너는 그를 영구 제명시켰다. 얄궂게도 1950년대 메이스와 ''뉴욕의 최고 중견수'' 자리를 다퉜던 미키 맨틀도 4년 뒤인 1983년 같은 이유로 영구 제명됐다.

쿤 커미셔너 재임 기간(1969~1984)은 메이저리그의 성장기이자 선수 파업, 자유계약(FA) 제도 도입, 마약 문제 등으로 점철된 격변기였다. 쿤 커미셔너가 난제들을 푸는 방식은 ''''커미셔너의 권위''''를 앞세운 독단이었다. 메이스에게 내려진 처분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메이스는 왜 영구 제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카지노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본다.

우선은 돈. 밸리스 호텔은 메이스에게 전성기 연봉과 맞먹는 10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것도 10년 짜리 계약이었다.

두 번째, 메이스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 가운데 상당수는 경마 마주지만 경고조차 받은 사례가 없다.

세 번째 이유는 고리묵은 다른 나라 야구 선수 이야기를 들추는 까닭이기도 하다.

메이스는 1988년 펴낸 자서전에서 카지노 호텔 일이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는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업가들이 11시라고 할 때는 11시5분이 아닌 정확한 11시였다''''며 ''''스타 선수는 야구장에서 해야 할 일이 없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돼 있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는 내 스스로 일을 해야 했다. 고객들의 질문을 제대로 받기까지만 3~4년이 걸렸다''''고 술회했다.

아마도 메이스는 불혹의 나이에 처음 접한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아닐까.

견강부회일 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메이스의 책을 읽으며 시카고 화이트삭스 이만수 코치의 아내 이신화씨를 떠올렸다.

이씨는 한 글에서 ''''유명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젖을 수 있다. 현역선수 시절 남편과 내가 틈만 나면 다짐한 것 중에 하나가 ''''유명함이 주는 편리함에 중독되지 말자''''였다''''고 썼다. 이 코치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메이저리그 코치로 롱런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자세 때문일 것이다.

스타 선수들은 수없이 많지만 은퇴 뒤 생활에서도 성공한 이들은 드물다(사실, 기자라는 직업도 썩 다르지 않다). 존경받는 이들은 더 드물다.

영광의 순간은 길지 않다. 메이스는 ''''은퇴하기 바로 전 해에도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다''''고 말했다.

P/S. 쿤 후임 커미셔너인 피터 위버로스는 1985년 메이스와 맨틀을 복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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