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세계화의 그늘, ''아동 노동과 착취''

[최민규 칼럼] 세계화 이면에 자본주의의 얼굴…마르카노, "중남미 소년들 구조적 착취"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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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막을 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모토는 ''야구의 세계화''였다.

1위 일본, 2위 쿠바라는 결과에 비춰서는 다소 우습지만, 실제 모토는 ''메이저리그의 세계화''였다.

미국과 중남미로 한정한다면 야구는 이미 세계화된 경기다.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선수들이 때로는 국기를 유니폼에 달고 메이저리그에서 우열을 겨룬다.

그러나 이 세계화의 이면에는 불법적인 ''아동 노동''과 ''착취''가 엄존하고 있다. ''세계화된 야구'', 그 그늘은 어둡다.

최근 메이저리그 스타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는 도미니카공화국. 스타들의 몸값도 엄청나다. 3월8일 베네수엘라와의 WBC D조 첫 경기 선발 라인업 10명 가운데 올해 연봉 1000만 달러가 넘는 선수만 5명.

이 가운데 유격수 미겔 테하다(30·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연봉은 꼭 1000만 달러다. 그러나 1993년 테하다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첫 프로계약을 맺었을 때 계약금은 얼마였을까.

단돈 2000달러였다. 메이저리그 인종장벽을 깬 재키 로빈슨이 48년 전에 받았던 계약금보다 1500달러가 적다.

테하다가 어렸을 때는 보잘 것 없는 선수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테하다는 미국 진출 첫 해인 1994년 마이너리그에서 74경기만에 18홈런을 때려낸 특급 유망주였다.


메이저리그는 중남미 각지에 ''야구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유망주들을 키우고 있다. ''아카데미''의 원래 뜻은 학교. 그러나 이 학교에는 수업 교재라곤 없다.

14~15세 소년들은 하루 8~12시간 야구에만 매달린다. 중남미의 여름 햇살을 뜨겁다. 그라운드에는 식수도 없다. 테하다도 오클랜드의 도미니칸 아카데미 출신이다.

아카데미에서는 오로지 메이저리그, 스페인어로 ''라스 그란데스 리가스(las Grandes Ligas) 진출만이 목표인 ''야구 기계''들을 길러낸다.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수들만이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는다. 계약이 가능한 나이는 17세부터다.

푸에르토리코를 제외한 중남미국가는 메이저리그의 드래프트 지역이 아니다. 선수들은 모두 자유계약(FA) 방식으로만 영입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중남미 유망주들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과 흥정해 몸값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에 그친다.

메이저 구단들은 유망주 선수를 아카데미에 ''감춰둔다''. 진짜 유망주는 경기에 잘 내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들에게는 선심쓰듯 푼돈을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우리 구단에 충성하라''는 최면을 거는 것이다. 계약 때는 선수와 부모에게 "에이전트를 데려오면 재미없을 것"이라고 을른다. 계약서는 2001년까지 영어로만 작성됐다. 그 결과, 중남미 유망주들의 평균 계약금은 3000~5000달러다.

예외는 있다. 베네수엘라가 낳은 천재투수 펠릭스 에르난데스(20)는 2002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71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박찬호의 94년 계약금 120만 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헐값이다.

지난 2002년 인디애나주립대 출판부는 책 한 권을 펴냈다. 제목은 ''야구의 세계화와 알렉시스 키로스의 비극(The Globalization of Baseball and the Tragic Story of Alexis Quiroz)''다.

베네수엘라의 슬럼가에서 자란 소년 키로스는 1990년 대 말 10대 나이에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고 아카데미에서 뛰기로 했다. 급여는 보잘 것 없었고, 그나마 구두로 들은 것보다 적었다.

키로스는 계약서 사본도 받지 못했다. 컵스는 그를 베네수엘라가 아닌 외국 도미니카공화국의 캠프로 보냈다. 아카데미는 배움터라기 보다는 노동 현장이었다. 게딱지만한 숙소 방은 동료 9명과 함께 썼다. 식사는 하루 두 끼. 바나나와 쌀이 주식이었다.

키로스는 계약 2년 째의 어느날 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당했다.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키로스를 헛간으로 데려갔다. 돌팔이 트레이너가 어깨를 발로 눌러 억지로 뼈를 끼워 넣은 게 ''응급 치료''였다. 구단 측은 다른 치료를 거부했다. 키로스의 선수 생명은 그날로 끝났다. 팔은 평생 불구로 남았다.

공동 저자인 메이저리그 아르투로 마르카노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중남미 소년들을 구조적으로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착취는 심한 경우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5월 현재 마이너리그에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는 모두 59명. 이 가운데 30명이 라틴계 출신이었다. 일부 선수들이 주장하듯 ''영어로 된 약병 라벨을 읽지 못해서''만이 이유가 아니다.

중남미에는 14~15세 소년을 점찍어 기른 뒤 메이저리그 구단에 파는 브로커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는 아카데미 운영자들도 있다. 이들은 가축을 사육하듯 선수들에게 약물을 권한다.

마르카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사람이 아닌 말에게 주사하는 스테로이드다. 선수들에게는 올바른 사용법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치명적인 부작용에 시잘리거나, 심지어 죽는 선수들도 있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암묵적인 공범이다. 베네수엘라 서머리그나 도미니칸 서머리그는 루키리그로 취급된다. 그러나 미국 현지의 루키리그와는 달리 이들 리그에는 약물 검사가 실시되지 않는다.

도미니카공화국 정부는 최근 ''소년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 아카데미에서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아카데미 규제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실효는 아직 없다. 국민들이 총을 들기보다 ''야구 백만장자가 될 꿈''을 꾸는 게 정치인들에게는 낫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도 마찬가지다. 마르카노는 몇 차례 선수노조에 라틴아메리카 야구의 실태를 알렸다. 돌아 온 대답은 "우리는 마이너리거들을 대변하지 않는다"였다.

펠레페 알루 감독은 말한다. "야구는 사업이다. 그것도 100% 자본주의 사업이다. 착취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착취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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