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에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주도한 오세훈 전 의원은 10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진행:신율 저녁 7:05-9:00)과의 인터뷰에서 애초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만든 건 "기업인들이 준조세처럼 내는 정치후원금이 불편하고 사실상 강요받는 현실에서 이런 후원금 청구서로 인한 고생을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했지만, 당시 기업인이나 기업인 단체 쪽의 반발이 의외로 거셌다고 말했다.
오변호사는 당시 "기업인들이나 단체에서 법 개정이 꼭 도움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돈으로 정치를 콘트롤해야 하는데 원천적으로 힘들어진다는 취지에서 항의랄까 방해공작''''이 상당했다고 회고했다. 오변호사는 ''''그 결과가 지금의 편법 탈법적인 정치자금 후원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변호사는 당시 기업인들이 "직접 찾아와 항의하거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했다''''면서 ''''사업하는데 도움되는 방향으로 정치인을 활용해야 하는데 합법적인 방법이 없어져서"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기업인들이 법인 명의 대신 개인 명의로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내거나, 회사 직원들 명의로 후원금을 분산하는 등 교묘한 거액 정치후원금이 많은 데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라 주목된다.
''''돈으로 정책을 사는 일''''을 막기 위해 개정된 정치자금법이 제 역할을 못하는 허점과 관련해서 어떤 대책이 마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이하 인터뷰 전문 ********************
▶ 진행 : 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오세훈 변호사
- 중앙선관위가 정치인들에 대한 고액 후원금 내역을 공개한 후 논란이 되고 있는데?
편법, 혹은 탈법이다. 더 나아가서는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어떤 점에서 불법인가?
이 제도를 만든 취지는 고액후원금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는 사람 입장에서 후원금에 상한액을 두었다. 그런데 한사람이 여러 명의로 하거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기부했다면 불법으로 봐야 한다.
- 개정 정치자금법에서 법인후원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나?
그렇다. 정경유착을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한국 현실에서 기업인들이 준조세 성격의 정치후원금 때문에 불편을 겪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상 강요에 가까운 후원금 청구서로 고생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구상한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업인 단체 쪽에서 "법 개정이 반드시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인들은 돈으로 정치를 콘트롤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원천적으로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취지에서의 항의와 방해 공작이 있었다. 입법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기업인 단체나 기업인이 있었다는 것인데, 역시나 그 결과가 지금의 편법 탈법적인 정치자금 후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방해를 했나?
찾아와서 항의하거나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기업인들이 사업하는 데 도움되는 방향으로 정치인들을 활용해야 하는데, 사실상 합법적 방법이 없어져서 그랬을 것이다.
- 이런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뭘까? 제도적 맹점 때문일까?
법적으로 금지한 것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므로 제도적 맹점이라고 할 순 없다. 어떤 법이든 지키는 사람이 피해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항상 방법은 만들기 마련이다. 이번 기회에 법을 위반한 후원자를 법으로 단죄해서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 지금 상태에서도 법적 제제가 가능한가?
그렇다. 하지만 모든 형태가 다 제제 가능한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사실상 한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에서 임직원들에게 ''특정 정치인이 활동도 잘 하니까 후원해서 도와주는 게 어떠냐''고 유도한 경우는 딱히 규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자유는 있는 거니까. 다만 사실상 사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데, 그런 것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양식에 맞게 할 부분이다.
하지만 한사람이 한 구획을 넘어서서 이름을 여러 개로 바꾸는 건 명백한 불법이므로 법적 제제가 가능하다. 특히 그중 가장 무겁게 처벌되어야 할 부분은 법인자금으로 기부를 하면서 여러 사람 명의를 이용한 것이다. 개인 돈이면 가벌성이 낮은데 비해 법인 자금으로 기부하며 여러 사람의 명의를 도용한 것은 불법이고 정면으로 법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다.
- 법인자금이라는 걸 밝힐 수 있나?
수사가 필요할 것이다. 개인 돈으로 포장했을 것이므로 쉽게 밝혀내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회계가 투명화돼있기 때문에 회사의 공적 자금이 그런 형태로 나갔다면 수사 기관에서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 ''직무 연관성 기부''도 논란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건설사 사람이 건교위 소속 위원에게 기부금을 내면 순수하게 볼 수만은 없을 텐데?
명백히 문제가 된다. 국회 내에 몇몇 상임위 중 이른바 ''물 좋은 상임위''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정무위는 명칭과는 괴리가 있지만 공정위나 금감위를 관할하기 때문에 상당히 후원금이 몰린다. 건교위나 산자위는 특정 업종의 기업인들이 후원금을 많이 낸다. 다만 그것을 법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양식에 맡겨야 할 문제다. 이런 것들이 양식이나 상식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국회의 윤리규정이나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직무 연관 기업으로 받는 돈은 자제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게 꼭 필요하다.
- "현재의 후원금도 과거처럼 공천 로비용 성격이 짙게 나타난다"는 지적이 있는데?
실제로 현장에선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특히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의 경우 정당공천을 제도화했기 때문에, 과거에는 없었던 동원형 후원금, 다시 말해 후원금을 많이 거두면 공천을 해준다는 약속까지는 하지 않았겠지만 사실상 공천을 받을 사람들이 그런 데에 압박감을 느끼고 후원금 모집에 동원되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의 정당공천을 제도화하면서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 직무와 연관된 기업으로부터 관련 상임위 의원들이 돈을 받지 못하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할 수는 없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걸 법으로 규제하기에는 법의 정신이나 현실적으로 볼 때... 사실상 그런 건 의원들의 윤리 문제다. 실제로 지난 국회나 지금이나 해당 상임위와 직무 연관성이 있는 경우 후원금이 들어왔더라도 돌려주는 의원들도 일부 있다. 최악의 경우 법으로 막아야겠지만, 일단 여론이 환기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실제로 법적으로 직무 연관성을 따지기가 애매한 기업도 꽤 많아서 입법 작업을 하기에 힘든 부분이 있다. 따라서 자율적인 윤리 문제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계속 해결되지 않으면 법적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 일각에서 제기되는 ''로비의 합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로 그런 필요성이 느껴질 때가 자주 있다. 다만 ''로비를 합법화할 만큼 우리 사회의 로비에 대한 인식이 성숙돼 있느냐''라는 문제부터 검토해봐야 한다. 계속해서 이런 형태의 후원이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미국 등 로비를 합법화한 나라의 예를 참고해서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 일부 현역 의원들은 "''오세훈 정치자금법''이 정치 현실에 맞지 않고, 너무 이상적이라 의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기업의 후원이 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다 선진화된 형태로 가져 가려면 미국처럼 회사 내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후원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에서 임직원들이 모여서 합리적 토론을 거쳐 후원을 하는 형태가 제일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국적 현실에서 그렇게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 팬클럽 형식의 후원회를 만들 수 있게 하면 과연 그 조직이나 기업이 남아날 수 있을까. 그런 여러 가지 논의와 고민 끝에 아직은 그 단계까지 나아가는 게 이르다는 판단 하에 차라리 부작용이 발생하는 기업의 후원을 금지하는, 일종의 과도기적 규제를 하는 게 좋겠다고 주장해서 관철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진다면 미국의 후원제도를 기업 내에 만드는 것도 방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17대 국회,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18대 국회까지만이라도 이런 규제를 계속 가져간다면 그때쯤이면 성숙한 후원 문화가 발전할 것 같다. 자연스럽게 소액후원이라든가. 과도기적 부작용들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자리 잡아가고, 18대 국회 말쯤까지 이 제도가 유지된다면 모든 면에서 성숙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오세훈 변호사는 정치할 생각 없나?
입장 변화는 없다.
▶진행: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월~토 오후 7시~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