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동의 해안선을 안내하기 위해 나선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최석봉 운영위원장은 대교 위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동이나 광양 사람들은 학교도 같이 다니고 직장도 함께 다닌다. 여기는 서로 말투도 비슷하다''''며 ''''이곳에서 경남과 전남의 경계는 행정구역의 구분에 불과하다''''는 말로 오늘 안내를 시작했다.
경남의 첫 해안선 하동 바다…절반은 인공물에 의해 점유
△경남의 첫 해안선에 도로 공사가
''''여긴 농사가 ''''주''''고 어업이 ''''부''''다 아이가. 그런데 요새는 고기 잡는 건 꿈도 못 꾸요. 아예 나라에서 고기를 못 잡게 한다 아이가. 그러이 농사 없을 때는 이거라도 해야지 오짜노. 몇 천만원 들여 배는 사놨는데 공친 사람들 많다 고마!''''
여기에 최석봉 위원장은 객관적 근거를 덧붙였다. 1990년대 건너편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바다가 오염돼 고기가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경남의 첫 해안선은 부산했다.
또 하나 부산한 이유가 있었다. 섬진대교 아래를 기점으로 이곳 명선을 거쳐 연막마을까지 564m 구간의 해안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섬진대교 아래부터 여로의 시작
일부 급경사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해안선 끝에 도로를 설치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사에 참여한다는 한 주민은 ''''도로를 놓을 바에야 산 능선을 쳐서 되겠소. 해안 따라 길이 나야 보기도 좋제''''라기도 했다. 지금도 자연 해안선이 도로로 변질해버리는 현실은 반복되고 있다.
△경남의 첫 항구 연막
해안선은 명선 나팔을 거쳐 연막마을에 닿는다. 그리고 오징어 대가리처럼 움푹하게 들어간 바다에 경남의 첫 항구가 생겼다. 이곳에서 바다를 둘러싼 지형을 바라보면 연막부터 시작되는 하동 갈사만의 넓이를 짐작할 수 있다. 연막 정면에는 남해 망운산이, 왼쪽으로는 하동 금오산 정상이 눈에 싸였다.
그 선을 기준으로 안쪽 광활한 넓이에 갈사만이 들어앉았다. ''''90년대 이후 한국중공업이 옮긴다. 아니다 현대제철이 옮긴다''''는 식으로 말 많았던 곳이다. 연막에서 갈사만 쪽으로 굽잇길을 돌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갈사만은 드높은 방파제 안 대규모 간척지의 모습으로 성큼 다가왔다.
다리 저쪽은 광양시 태인동
1960년대 간척사업이 진행돼 280만평의 바다가 농토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는 ''''본래 광양제철 터가 여기였다''''는 말부터 공단유치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셈이다. 간척지는 그전 바닷가였을 청도·신도(금성면 면소재지)·명덕을 황당하게 만들어놓았다.
연막 사는 60대의 할머니는 ''''농사지을 사람이나 있나. 나이 많은 사람한테는 바다가 벌어먹기 쉽지''''라며 연방 괭이를 마른 흙에 내리쳤다.
여기서 다시 발전소쪽 언덕길을 오르면 하동의 바다를 왜 일반인들이 연상하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200만평 넘는 해안을 간척지로 뺏긴 바다는 하동화력발전소 앞에서 또다시 제방에 갇혔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폐수나 폐기물을 활용한 횟가루 등의 유출을 막기 위해 갈사만에 버금가는 면적의 바다를 가뒀다. 그 면적은 현재 5호기가 있는 발전소에 6·7호기가 더 들어서면 그만큼 넓어진다고 한다. 하동 바다의 절반은 인공물에 의해 점유됐다.
△전어로 유명한 하동의 술상
발전소에 가로막혀 길을 잃은 해안선은 고개를 몇굽이 돌아 금남면 대송리 사등마을 안쪽 한치에 가서야 다시 주민들의 품으로 안긴다. 이 마을 앞까지 발전소 뒤쪽 제방이 설치돼 있다.
다리 이쪽은 하동군 금성면
뭐 어찌됐든 이곳 갯벌에서 주민들은 파래를 거둬들인다. 그 양이 무한정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그물코를 고치는 할매 손이 한가하다.
대송 소송을 거친 해안선은 노량에 이른다. 하동 쪽도, 건너편 남해 쪽도 노량이다. 1598년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을 치르고 전사한 곳이다. 건너편의 남해, 오른쪽 발전소 방향의 대도 등으로 싸인 바다를 보면서 옛날의 해전을 연상하려 하지만 잘 안 된다. 알아야 상상할 수 있다.
금남면 면소재지이기도 한 노량은 남해대교로도 유명하다. 다리 아래쪽 갯벌에는 굴을 까는 주민들의 손길이 봄을 부른다. 여기서는 파래를 말리는 방법이 두 가지다. 하나는 해안에서 바닷바람으로, 또 하나는 산 위 소나무숲에서 솔바람으로 말리는 것이다. 소나무숲 속에서 파래를 말리던 66세의 할머니는 ''''피부가 좋으십니다''''하는 말에 ''''내가 한때 화장품 장사도 안 했습니꺼'''' 하셨다.
''''경남·전남 행정구역 구분일 뿐 학교도 직장도 함께 다녀요''''
솔바람에 파래내음 덕이라는 답이 듣고 싶었는데 핀트가 맞지 않았다.
노량을 지난 해안선은 하동군 진교면으로 흐른다. 여기서 사천시 곤양면의 바다로 접어들기도 한다. 진교의 바다 나들이에서 술상과 발꾸미 마을을 빠뜨릴 수 없다. 가을전어로 제철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곳이다.
얼마나 맛이 있으면 이곳 횟집은 물론 주민들이 배 위에서 펄떡펄떡한 전어를 판다고 할까. 이름마저 술상이니 전어회와는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마을이다. 갈사만과 화력발전소로 숨이 끊어졌던 하동의 해안선이 노량·술상에 이르러 겨우 호흡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