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법의는 사인을 밝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쉽지만 사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규명하는 역할을 한다. 부산에서는 이제 이 일을 맡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11년 동안 부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에서 부검을 담당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남부분소 김광훈(45) 법의학과 과장이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남부분소는 지난해 법의 2명이 그만둔 데 이어 김씨마저 사표를 내 법의가 공석인 상태가 됐다.
10일 오후 남부분소 법의학 과장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 맡았던 사건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씨는 부산대 의대를 나와 종합병원에서 3년 간 근무한 뒤 법의 일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법의들은 1년 간 선배 법의에게 피를 말리는 훈련과정을 거친다. 3개월 정도는 부검을 보기만 하고 3개월은 선배 법의와 함께 부검을 하며, 다음 3개월은 쉬운 사건을 맡아 배우는 과정을 거친다. 선배 의사가 완전히 ''OK''할 때까지 수련은 계속된다. 김씨는 수련기간 삼풍백화점 사건을 맡아 훨씬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국과수 법의는 형사사건의 시신을 검안하고 부검해 사인을 밝히는 국가공무원 의무직이다. 김씨는 부검 전 마음 속으로 ''범인을 꼭 잡아 주겠다''고 다짐한 뒤 메스를 든다고 한다. "아직도 일부 검사는 형식적으로 묵념을 한 뒤 부검을 시작하자고 하지만 무엇보다 범인을 잡는 것이 급선무지요."
김씨는 지난 2002년 김해 돗대산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나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을 잊을 수 없다.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때 한달을 꼬박 고생해서 모든 시신의 신원을 밝혔을 때 법의로서 마음의 짐을 덜게 됐다고 한다. 지난 11년 동안 2500여명에 이르는 시신을 부검한 그는 "뒤로 넘어져도 이 사람들이 (한을 풀어 준) 저를 뒤에서 받쳐줘 다치지 않을 거라고 주위에서 말을 한다"며 웃었다.
법의는 요즘 인기가 없다. 올 초 국과수에서 7명을 충원하려고 모집 공고를 냈지만 신청자가 단 1명뿐이었다. 현재 국과수 법의는 21명 정원에 12명뿐이다. 국가 부검업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국과수 법의들은 경찰병원이나 국립의료원의 같은 직급 의사보다 연봉이 100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 한 원인이다.
김씨는 동료 3명과 함께 부산대 의대에 법의학연구소(가칭)를 만들어 제대로 된 법의학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후학도 키우고 강의도 하면서 법의학 활성화에 노력할 예정이다.
김씨는 "국과수에 국가 예산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민간인 신분이 되지만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일은 계속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