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칼잡이' 김진태 총장은 '정치인'이 됐는가?

김진태 검찰총장 (자료사진 / 윤창원기자)
간첩증거위조 파문 사건이 지난 2월 중순 터졌을때부터 다수 언론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지도력과 판단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며 김진태 리더십을 일제히 주목했습니다.

사실 간첩증거조작 사건만이 김 총장의 시험대는 아닙니다. 국정원을 수사를 하다가 찍어내기로 물러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사건도 또다른 시험대라고 지목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진태 총장은 시험대에서 과락을 맞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봅니다. 본인은 취임한지 이제 겨우 넉달밖에 안됐습니다.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더더욱이 슬픈 일은 김 총장이 이제는 법률을 정교하게 집행하는 '칼잡이'가 아니라 '정치인'이 다 됐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김 총장은 최근 확대 간부회의에서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위장 탈북 간첩사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을 '위장 탈북 간첩사건'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번 사건을 보는 그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피의자 유우성씨에 대해 국정원이 간첩이라고 증거 조작을 했지만, 유씨가 분명히 '간첩'이라는 겁니다. 어찌 보면 간첩을 잡다가 국정원과 검찰이 '실수'를 살짝 저질렀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말을 여의도에 있는 정치인이 했다면 시비를 걸지 않겠습니다. 유씨가 진짜 간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정치인'이 아니고 분명히 '법률가'입니다.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증거를 갖고 간첩 혐의를 입증하는 게 검찰입니다. 그 검찰을 지휘하는 자가 검찰총장입니다.

검찰은 유씨에 대해 간첩 혐의를 입증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것도 국정원이 삼류들이나 하는 방식으로 '증거조작'을 했는데도, 수사와 기소,공소유지를 담당한 검사들은 본인들의 변소를 백퍼센트 수용하더라도 '택배수사, 하청수사'를 했다는 게 일반 여론입니다. 수사의 주재자이자 통제자인 자들이 스스로 직무와 권한을 포기하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소도 다 믿을 수 없습니다. 국정원이 여러달에 걸쳐 여러 문건을 날조했고 검사는 그 과정에서 "비공식루트'를 통해서라도 문서를 구해오면 항소심에서 유죄를 받아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황을 보면 바보가 아닌 한 국정원의 문서위조를 새까맣게 몰랐다는 건 도저히 납득 되지 않습니다.

검찰은 증거로 입증하고 공소장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은 검사에게 형사사법의 정의를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국가기관의 지위를 인정해 검찰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검사는 수사절차에서는 수사의 주재자로서 사법경찰관리를 지휘·감독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독점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국정원법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지만 검사는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데 어느집단, 어느누구보다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검찰은 검찰총장이 '외압'을 막아주고 직을 건다면 대통령도 조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함부로 수사하면 안되겠지만, 권한으로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엄청난 권한을 갖고도 검찰은 유씨의 간첩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거날조를 하다가 들통났습니다.

그렇다면 김진태 총장은 "부끄럽고 자괴스럽다"고 국민에게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유우성씨가 "그래도 간첩"이라며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사실 관계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증거에 기초한 판단이 아니라, 개인의 심증에 의존해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발언이 갖는 부작용은 엄청납니다. 우선, 유씨를 '위장탈북 간첩'으로 명명함으로써 검찰은 '자기 합리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유씨 사건을 담당한 이시원,이문성 두 검사가 간첩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지만, 간첩사건은 "문서를 조작해도 용서할 수 있다"는 위험한 시그널이 녹아 있습니다.

김진태 총장은 내부 회의에서 "해당 검사들이 실력이 없다, 한심하다. 왜 그것도 확인을 못했냐"며 심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밖으로는 "(우리 검사들이)유씨가 간첩인데 실수로 잡지 못한 것입니다"라며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해당 검사들을 '읍참마속'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밖에서 그들을 비호하는 것을 보면 김 총장의 '이중적 태도'가 더 정치인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국정원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쳐 너무 암담해서일까요?

이번 사건은 유씨가 간첩이어서 단순히 끝날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그것과 별도로 지금 국민들이 심각하고 엄중하게 검찰에게 묻는 것은 '국가 형벌권'을 가진 국정원과 검찰이 사법체계를 능멸하면서까지 왜 민주주의의 절차를 무너뜨리고 있냐는 것입니다.

김총장이 진정한 법률가라면 그 질문에 대해 무엇이라고 답하겠습니까? 사실 검찰총장은 사표를 내야 합니다. 책임지라고 그 자리는 존재합니다. 그가 아니어도 검찰총장 후보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법률가의 도리를 도외시한 채 제식구나 보호하면서 '정치인'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험대에서 탈락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슬픈 칼잡이' 김진태 총장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차라리 권위가 떨어지기 전 그의 명성을 간직하려 합니다. 오늘따라 2002년 11월 그가 들려준 '슬픈 칼잡이 이야기'가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슬픈 칼잡이 이야기(哀憐劍士說)'
가을 밤에 홀로 강월헌에 올라(秋夜獨上江月軒)
아프게 떠난 한 칼잡이를 떠올린다(回億恨去一劍士)'
밤중에 출근함은 달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고(五更登廳非觀月)
매 끼니를 거른 건 신선되려 함이 아니었네(三朝避穀不求仙)"
제 몸이 급류에 휩쓸린 줄도 모르고(不知身在急流中)
밤늦게까지 흉적을 무찌르려 하다(夜半辭家破凶賊)
폭풍우에 쓰러지니 이런 변고가 있는가(雷雨被襲何變有)
걱정 가득한 칼청에는 탄성만 들린다(嘆聲憂慮滿劍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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