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1999년 '제주4·3특별법'이 만들기 전까지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었다. 제주 주민 3만여 명이 군인·경찰 병력 등에게 학살된 이 사건은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7년 7개월간이나 이어졌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6·25전쟁을 거쳐 이승만 정권이 잔당 소탕을 명목으로 유혈진압을 벌이던 때, 이곳 섬사람들은 정권 유지를 위한 희생양이 돼야만 했다.
최근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지금까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던 관련 행사도 올해부터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적 위로 행사로 격상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온 아픔이 쉽사리 가실 리 없다. 제주 4·3의 원혼을 달래고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 짙은 어둠에 드리운 한 줄기 빛 '지슬'
지슬은 마치 제사를 지내듯 신위, 신묘, 음복, 소지 등 제의적 형식을 띤 네 개의 시퀀스로 이뤄졌다.
영화의 배경은 1948년 11월 해안선에서 5㎞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떨어진 뒤의 제주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각자의 삶에 충실하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였다. 누군가는 돼지 굶길 걱정에 마을로 내려왔다 잔인하게 죽기도 하고 "달리기를 잘한다"며 위기의 순간 군인들을 유인했다가 잡혀서는 오히려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청년도 있다.
극중 주민들이나 토벌대 군인들의 말 하나, 몸짓 하나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뒤 극으로 치닫던 이념 대립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굴곡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려 이름을 잃어 버린 채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온몸으로 자신의 역사를 말하는 까닭이다.
그들의 역사를 모두 모아낸 이 영화는 '빨갱이' '반동분자'라는 말이 놓치고 있는 무한한 인류애를 담고 있다. 폭력적인 순간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빼어난 영상이나 음향효과로 표현한 점도 인상적이다.
지슬을 연출한 제주 출신 오멸 감독은 개봉 당시 "제주 4·3을 재현한다는 목적보다는 당시 이름 없이 사라진 원혼들에게는 위로를, 아직까지 가슴에 남겨진 자들에게는 상처가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 치유 못한 영혼들의 땅 담아낸 '비념'
비념은 제주말로 작은 굿을 뜻한다. 비나리라고도 하는데 기원(祈願)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제주시 애월읍 납읍에 사는 강상희 할머니의 남편은 4·3으로 희생됐다. 해군기지 문제로 떠들썩한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걸린 '4·3의 원혼이 통곡한다' 등의 글귀를 담은 수많은 현수막은 제주 4·3과 해군기지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카메라는 유령처럼 제주도 납읍리, 가시리, 강정마을, 일본 오사카 등을 돌며 그 흔적과 균열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어 다시 강상희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집 앞마당으로 돌아온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잠자리 밑에 녹슨 톱을 두고 살아온 할머니.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짊어진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은 이렇게 녹슨 톱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영화는 이야기보다는 공간, 사물의 움직임, 바람 부는 풍경, 곤충과 동물 같은 생명의 이미지들을 보여줌으로써 은유와 상징을 통해 제주의 슬픔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다.
비념을 연출한 임흥순 감독은 오래 전부터 제주도가 아름다운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실은 거대한 무덤이고, 치유되지 못한 영혼들의 땅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비주얼아티스트로 활동하던 그가 2년 4개월 동안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제주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역사와 기억들을 바람, 나무, 돌, 숲, 바다를 통해 그려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