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조작사건의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국정원 요원 김모 과장과 협력자 김모 씨를 구속기소 하고 윗선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 과장의 윗선이 사법처리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검찰의 수사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히 유우성 씨의 간첩혐의 사건을 지휘한 공안검사들에 대해서도 기소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제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검찰의) 국정원 관련 수사 왜 번번이 벽에 부딪히나?"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마무리단계다. 검찰관계자는 "김 과장의 상관인 대공수사국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면서도 "아직은 뭐라고 단정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빠르면 이번 주말 전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추가 기소될 국정원 관계자는 많아야 한두 명에 그칠 전망이다. 일단 서류위조에 개입된 주 선양 총영사관 이인철(48) 영사와 김 과장의 상급자인 이모(3급) 대공수사처장이 유력한 기소 대상자로 꼽힌다.
그러나 이 처장 위에 있는 김모(2급) 수사단장, 이모(1급) 대공수사국장, 서천호 2차장 등은 입건조차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처장 이외의 상급자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처장까지는 몰라도 더 이상 올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국정원의 고위층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물증이 있어야 하지만 물증이 없다"고 말했다.
=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이다. 유우성 씨 간첩사건은 국정원이 심혈을 기울인 사건이다. 그런데 1심에서 가장 핵심인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그렇다면 국정원 내부에서는 대책회의도 열리고 감찰도 이뤄졌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게 없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수사에서는 실무자들이 증거위조를 공모했고 심지어 국정원에서 위조서류를 발송한 사실까지 확인했지만 윗선의 개입여부를 밝혀내지 못했다.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다.
검찰은 그러나 국정원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서류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위조됐는지는 소상하게 밝혔다.
국정원에서 증거서류를 조작하기 위한 기획회의를 했고 국정원 사무실에서 팩스를 보내면서 중국에서 보낸 것으로 위조했다. 심지어 변호인 측에서 제출한 서류를 중국현지에서 위조서류를 만드는데 이용했다.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보면 국정원이 얼마나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증거서류를 위조하려고 시도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검찰의 수사가 국정원 윗선을 겨냥해서 진전되는 단계에 핵심 관련자인 권모 과장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수사가 벽에 부딪혔다. 검찰이 그 이후에도 국정원 관계자들을 소환하면서 수사를 계속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검찰이 '윗선'이 없었다고 하지 않고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심은 가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로 들린다.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었느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데 검찰은 수사의지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검찰내부에서는 국정원에 대한 수사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국정원 자체에 대한 수사를 못하도록 한 제도상의 한계가 있고, 또 이번 일이 해외에서 대부분 이뤄진 일이고, 국정원 내부에서 한 일"이라면서 "수사가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고 진상조사에 먼저 들어갔다. 무슨 홍길동전도 아니고 '수사를 수사라 하지 못하고 진상조사'라고 하면서 국정원을 압박해 들어갔던 것도 국정원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검찰의 '배려'였다는 그런 평가도 나온다.
= 그렇다. 검찰이 국정원에 대해 마음대로 수사를 할 수 없다. 국정원장이 동의하지 않으면 국정원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압수수색도 할 수 없고 국정원 직원을 소환하지도 구속하지도 못한다. 수사라는 건 밀행성의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장의 동의 없이는 국정원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수사내용을 미리 알려주고 수사를 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국정원직원법 17조는 "직원(퇴직한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이 법령에 따른 증인, 참고인, 감정인 또는 사건 당사자로서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증언하거나 진술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검찰이 국정원 트위터팀 직원을 소환하려 했는데도 직원들은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또 국정원직원법 23조는 수사기관이 국정원 직원을 구속하려면 미리 원장에게 알려야 하고, 수사를 시작해도 즉시 이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은 대선개입 사건 재판에서 검찰이 국정원 직원을 체포할 때 사전에 통보를 안 했다며, 국정원 직원의 진술을 증거로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간첩증거 조작사건의 검찰수사 결과는 아주 박하게 표현하자면 '국정원에서 인정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허가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문제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이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 조항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지적이 있다. 국정원 법제관을 지낸 이석범 변호사는 "이 조항은 아주 예외적으로 국가안보라던지 중대한 이익의 침해가 있을 때에만 진술을 거부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석범 변호사는 특히 "국가정보원법 제2조에는 국가정보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남재준 원장이 직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법 2조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라 한다)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 국가정보원직원법 제17조 (비밀의 엄수) ①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직원(퇴직한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이 법령에 따른 증인, 참고인, 감정인 또는 사건 당사자로서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증언하거나 진술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③ 직원을 증인, 참고인, 감정인으로 신청한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 관계인은 해당 직원이 제2항에 따른 허가를 신청하지 아니하여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을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원장에게 증언 또는 진술의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④ 원장은 제2항 또는 제3항에 따라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치거나 군사, 외교, 대북관계 등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가를 거부하지 못한다. ⑤ 직원이 국가정보원의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발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표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제4항을 준용한다. ⑥ 원장이 제2항 또는 제3항에 따른 증언 또는 진술을 허가한 경우 법원은 공무상 비밀 보호 등을 위한 비공개 증언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전문개정 2011.11.22] 제23조 (직원에 대한 수사 등) ① 수사기관이 직원을 구속하려면 미리 원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수사기관이 현행범인 직원을 구속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원장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여야 한다. ③ 수사기관이 직원에 대하여 수사를 시작한 때와 수사를 마친 때에는 지체 없이 원장에게 그 사실과 결과를 통보하여야 한다. [전문개정 2011.11.22] |
= 그렇지는 않다. 국정원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국정원장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난 2005년 국정원의 불법도청사건이 불거졌다. 이른바 '미림사건',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불리는데 이 수사팀을 지휘했던 인물이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황교안 현 법무부장관이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은 검찰의 국정원 대상 압수수색 1호 사건이기도 하다.
9년 전, 국정원 지휘부를 겨냥한 검찰의 수사는 거침이 없었다. 143일간의 수사 끝에 안기부 불법감청의 전모를 파헤쳤고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기소해 유죄를 받아냈다.
검찰의 의지만으로 그런 수사가 가능했을까? 당시 국정원이 지금처럼 수사에 비협조적이고 꼬리자르기에 나서고 국정원장이 수사를 방해했다면 전직 국정원장 2명을 구속하면서 불법도청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정원 일부직원의 일탈내지는 과잉충성의 결과였다면서 흐지부지 하지 않았을까?
이석범 변호사는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하라고 지시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된 직원들이 진술을 하면서 관련사실이 사실대로 조사가 됐다"면서 "그래서 신건과 임동원 원장이 불법감청을 지시하거나 그런 내용 보고받지 못했다고
부인했음에도 유죄로 인정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검찰수사의 걸림돌이다. 문제는 증거서류 조작이 남 원장의 재직시절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따라서 증거조작의 전모가 드러날 경우 남 원장이 법적 책임이 아니더라도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따라서 국정원으로서는 실무자선에서 꼬리자르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검찰수사에 적극협조하지 않음으로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정원이 버티고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것은 분명 대통령의 지시를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검찰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을 먼저 경질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전직 사정당국 고위관계자는 "남재준 원장이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는 검찰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수사검사들을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논란인데?
= 그렇다. 검찰은 수사를 지휘하고 재판에 회부해서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 검사들의 존재감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 국정원에서 서류를 가져오면 재판부에 제출하는 '택배수사', '하청수사'를 했다.
만약 담당 검사가 문서 위조 가능성을 인지하고서도 이를 덮고 넘어가려고 했다면 사실상 '공범'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마지막 검증과정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검사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책임론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석범 변호사는 "이모 부장검사가 유가려 수사 당시 국정원 수사지도관으로서 관여했는지 안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검찰에서는 국정원 직원들이 증거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하는 상황에서 관련 검사들을 입건 할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국정원의 수사를 맹종하는 태도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검찰이 경찰에 대해서는 유독 엄격하면서 국정원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검찰의 수사의지도 분명 문제가 있다. 의지만으로 돌파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검찰이 어느 정도 노력했는지 그 과정을 보여야 한다. 안기부 X파일 수사당시 검찰지휘부는 "책임자들이 부인한다고 실무자만 처벌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원칙론을 바탕으로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해 전격적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검찰은 왜 그런 원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국정원 눈치 보기로 일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