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맞수' LG-두산, 그 애증의 관계는 올해로 꼭 30년째가 됐다. 지난 1985년 두산의 전신인 OB가 연고지를 대전에서 옮겨오면서 LG 전신 MBC와 서울 살이가 시작됐다. 이후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세월 속에 두 팀의 명칭도 지금처럼 바뀌었다.
이에 CBS노컷뉴스는 두산-LG의 '서울 동거' 30년과 프로야구 개막을 맞아 특집 대담을 마련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를 이화여대에서 열 정도로 야구장의 여풍(女風)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두 구단 프런트가 엄선해 추천한 여성 팬을 CBS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본격 스포츠 토크쇼 '뉴 스토커'에 초청했다. 자부심과 경쟁심, 부러움이 섞인 90여 분 유쾌한 '장외 설전'을 지면에 담았다.
▲두산 '야구 부인' VS LG '야구 처녀'
이 씨의 성화에 야구에 문외한이던 남편은 물론 딸과 예비 사위, 아들도 모두 베어스 팬이 됐다. 야구 시즌 때문에 이 집 식구는 여름 바다를 가본 적이 없다. 연간 회원권자인 이 씨는 선수들의 이동과 기록도 꿰고 있는 전문가다.
LG 골수팬 송진희 씨는 야구 입문이 이제 4년째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처음 언니, 동생에 이끌려 야구장에 왔지만 지금은 세 자매 중 가장 열성적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집 식구는 죄다 LG다.
공교롭게 애인 없이 지낸 지도 어언 4년이다. 남자 대신 야구와 연애를 하고 있는 이른바 '야구 처녀'다. 늘씬한 몸매에 외모도 상당한 송 씨는 "남친을 만들 생각도 없다"면서 "기다렸던 시즌이 돌아왔으니 야구장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란다. 늦바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이래서 우리가 우승한다"
이어 "우리는 이병규와 봉중근, 박용택 등 고참들과 오지환, 문선재, 유원상 등 젊은 선수들의 신구 조화가 잘 이뤄져 있다"고 이유를 들었다. 또 "그동안 선수들도 많이 키워 백업도 튼튼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 씨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산은 베테랑들이 적잖게 빠져 경험 부족이 우려된다는 것. 이 씨는 "코치까지 하길 바랐던 김선우와 임재철이 LG로, '종박 베어스'라고까지 했던 주축 이종욱과 손시헌도 NC로 갔다"면서 "홍성흔이 있지만 젊은 선수들을 이끌 고참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송일수 감독이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 선수들과 소통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우승은 몰라도 4강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오래 지켜봐온 만큼 냉정한 자기 분석이 섞인 전망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죠"
2000년대만 보면 두산이 앞선 것이 사실이다. 2001년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0번이나 포스트시즌(PS)에 나섰다. 반면 LG는 2002년 준우승 이후 10년 연속 가을야구에서 소외됐다. 다만 지난해 LG는 정규리그 2위로 11년 만에 PS 감격을 누렸다. 그러나 PO에서 두산에 밀려 KS는 무산됐다.
올해 4강 후보를 꼽을 때 이 씨는 삼성, 넥센 다음으로 "그래도 한 지붕 두 가족이니 LG를 넣어준다"고 했다. 이에 송 씨는 "미안하지만 두산 대신 KIA를 넣겠다"고 웃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혹시 LG의 아픈 역사를 살짝 꼬집는 것은 아닐까. 이에 송 씨는 "사실 두산이 부러운 것은 마스코트(철웅이)와 예쁜 유니폼"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두산에 부러운 점은 없다는 뜻일 터이다.
어떻게 보면 이 씨의 애정이 오랜 시간 우직하게 우려낸 곰탕이라면, 송 씨는 풀무질 신바람에 빨갛게 달궈진 쇳덩이다. 이 씨는 후후 불어가며 한 숟가락 먹을 여유가 있는 반면, 송 씨는 쇠도 녹이는 열정으로 뜨겁다.
▲"여성 신경 써줘야…팬 무시 말아야"
그래도 정말 데려오고픈 상대 선수는 있다. 송 씨는 지난해 LG에 1승1패 평균자책점 2.78(ERA)을 찍은 노경은을, 이 씨는 두산에 3승1패 ERA 2.81을 기록한 좌완 신재웅을 꼽았다. 잘 던지기도 하지만 자기 팀에 해를 주는 선수들이다. 꼭 지켜야 하는 선수로는 각각 김현수(두산)와 이병규(LG, 9번)를 찍었다.
이 씨는 연륜이 느껴지는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야구장의 가장 좋은 자리는 기업인과 정치인, 연예인 등 '귀족 놀이'가 펼쳐진다"면서 "특히 포스트시즌에 팬들은 부속품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제 9, 10구단 창단만 하지 않고 야구장 등 시설부터 갖춰야 한다"면서 "정말 야구를 잘 아는 분이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0분 사이에 두 팬은 벌써 30년 '동거'를 한 듯 친해졌다. 설전이 펼쳐졌지만 유쾌했고 애정이 넘쳤다. 이 씨는 1982년 탄생부터 프로야구와 호흡해왔고, 송 씨는 그 이후 프로야구 역사를 함께 써나갈 후계자다.
뜨거운 악수를 나눈 둘은 시즌 뒤 멋진 재회를 약속했다. 과연 올해 누가, 또 어느 팀이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