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관계자들은 "사법진행이 비정상적"이라며 우려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황제노역' 전례없는 조치로 '사법 불신' 높아져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노역장 유치 환산금액이 하루 5억원에 이르면서 '황제 노역'의 대명사가 됐다.
하루 노역의 대가를 5억원으로 정한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사의표명을 했지만, 법원은 '재벌은 봐주고 국민은 무시한다'는 비난에 처하게 됐고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훼손시켰다.
또 법 적용이 여론에 따라 춤을 추면서 '법적 안정성'도 손상됐다.
검찰은 벌금 미납시 노역장 유치라는 절차에 따라 허 전 회장을 노역장에 유치시켰지만, 황제노역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높아지자 벌금 감액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돌연 허씨를 석방하는 전례없는 조치를 단행했다.
여론의 뭇매가 잇따르자 법 집행을 중단해버린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법 집행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검찰이 노역 중단조치에 들어간 것은 '위인설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특정인에 대해 특정한 법을 집행하도록 하는데 있어서는 안될 행위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법 집행이 이처럼 개인에 따라 여론에 따라 춤춘다면 법적 안정성이 떨어져 사회 구성원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안되는 게 없다"는 위험한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 학자에 따라서는 "노역장 유치의 법적 성질이 환형 처분이 아닌 재산형의 특별한 집행방법이라고 해석하는 견해에 의하면, 벌금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로 석방하는 것은 위법처분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국민 눈높이 바라보지 못하고 '엘리트 주의'에 빠져
황제 노역 파문과 간첩증거조작 사건 처리과정에서도 법원과 검찰은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난이 높다.
황제노역 결정의 당사자인 장병우 광주지검장이 재산문제에 대한 추가 의혹이 제기되자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대법원은 책임자를 과감히 문책하지 못하고 눈치보기로 일관했다.
판결 내용을 문제삼아 관련자를 사퇴시킨다면 판사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14일 핵심증거로 제출됐던 3건의 중국 공문서가 위조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검찰은 "내용은 문제가 없지만 발급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며 국정원을 감쌌다.
그러나 결국 3개 공문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자 진상조사팀을 수사팀으로 전환하는 등 뒷북 수사를 하고 국정원 문서위조 책임자도 밝혀내지 못한 채 실무자 2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더욱이 이번 간첩 사건을 수사하고 공소유지를 한 검사들은 "문서위조 사실을 몰랐다"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1년여 년에 걸쳐 국정원 수사를 주재한 검사가 핵심문서가 위조된지도 모르고 법정에 제출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지만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수뇌부에서도 상황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뭐 하나 잘못돼도 근본적인 고침이 필요하다는 생각보다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니 누가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도 별로 안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또 "검찰, 법원 모두 사안의 중대성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들을 처리할 때 '엘리트 의식'에 젖어 국민의 눈높이를 의식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직 검찰 고위관계자는 "판사나 검사에 대한 신분보장은 '법치'를 목숨 걸고 지키라고 보장한 것이지, '공직을 천직'이라고 끝까지 생각하며 정년을 보장하라고 한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