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 키플레이어에 대한 양 팀 사령탑의 답변은 사뭇 달랐다.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 신치용 감독은 "리베로 이강주"라고 말했다. 레오-박철우가 버틴 공격진에 비해 '월드 리베로' 여오현이 현대캐피탈로 이적해 다소 열세인 수비진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반면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은 "우리는 모든 선수들이 100%를 발휘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레오라는 확실한 득점원이 버틴 6년 연속 우승팀 삼성화재는 어느 한 선수가 잘 해야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후 김 감독은 "굳이 꼽자면 세터 권영민"이라고 귀띔했다. "선발로 나왔지만 끝까지 뛴 적이 1경기뿐"이라면서 "마지막까지 자신감을 갖고 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날 경기 초반 예상치 못한 큰 변수가 발생했다. 바로 현대캐피탈 주포 아가메즈가 부상으로 빠지게 된 것. 10-7로 앞선 가운데 아가메즈는 블로킹 이후 착지하다 상대 레오의 발을 밟아 왼발을 접질렸다. 한참을 쓰러져 있던 아가메즈는 부축을 받으며 응급 치료를 받았다.
승부의 추는 순식간에 삼성화재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아가메즈 변수는 현대캐피탈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경기는 김호철 감독의 의도대로 흘렀다.
세터 권영민도 아가메즈가 빠진 이후 진가를 발휘했다. 퀵 오픈과 속공 등 특유의 빠른 토스가 국내 선수들과 절묘한 호흡을 이뤘다. 김 감독의 말대로 모든 선수들이 100% 이상을 뛰었고, 블로킹과 서브 에이스 1개씩을 곁들인 세터 권영민도 모처럼 이름값을 해냈다.
결국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를 3-0(25-20 25-19 25-22) 완승을 거뒀다. 4시즌 만의 챔프전에서 먼저 웃으며 5전3승제 시리즈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반면 삼성화재는 아가메즈가 빠지면서 오히려 긴장감이 풀린 듯했다. 특히 의존도가 높았던 레오가 흔들리자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레오는 이날 범실 11개를 쏟아냈고, 팀 실책도 23개로 상대보다 8개 많았다. 레오는 공격 성공률도 50%에 그쳐 정규리그 1위(58.57%)의 명성에 못 미쳤다. 박철우도 6점에 머물며 레오를 지원해주지 못했다. 특히 리시브 정확도가 50%를 밑돈 이강주 등 수비진이 흔들렸다.
경기 후 김 감독은 "아가메즈가 나간 게 선수들에게 오히려 기름을 확 부었다"면서 "오랜만에 현대다운 경기를 했고 선수들의 의지가 살아난 것 같다"고 뿌듯한 소감을 밝혔다. 신 감독은 "상대가 아니라 우리와 싸움에서 졌다"면서 "특히 이강주가 수비에서 무너졌다"고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