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비세 인상은 저출산 고령화로 부족해진 연금, 의료비 등 급증하는 사회보장비 재원 충당을 위해 단행되는 것이다.
일본은 민주당 정권하인 2012년 8월 '소비증세법'을 제정, 현재 5%인 소비세를 2014년 4월 8%로, 2015년 10월에는 10%로 추가 인상키로 결정했다.
다만, 이 법에는 경제상황의 호전이 확인되지 않으면 소비세 인상을 보류한다는 '경기 조항'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총리가 경제 지표 등을 보고 소비세 인상여부를 결정하게 돼 작년 10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증세를 최종 결단, 4월부터 소비세가 8%로 오르게 됐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이번 소비세 인상이 장기 집권의 향방을 가늠할 시금석이자 하나의 '도박'이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 때인 1997년 소비세 인상 후 공교롭게도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었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97년의 트라우마'다. 더욱이 아베 정권은 내년에 한 차례 더 소비세를 인상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일본 경제는 하시모토 정권이 소비세 인상을 단행하자마자 2년간 플러스 성장을 했던 경제가 곤두박질 쳐 이듬해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 비교적 순항하던 하시모토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물론 1997년 상황과 지금 상황은 다른 점도 많다.
공교롭게도 일본 경제는 97년 가을의 예상치 못했던 IMF사태(아시아통화위기)로 불황에 돌입, 디플레이션의 긴 터널로 빠져들어 갔다.
아베 정권은 '1997년 트라우마'를 피하려고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이르면 6월 노동시장 규제 완화 등 새로운 성장전략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걱정거리도 없지 않다. 그동안의 아베노믹스로 주가가 오르고 그 덕택에 부유층과 고가품을 중심으로 소비는 늘어났지만 엔저에도 수출이 좀처럼 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너스권을 맴돌았던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1% 대 상승으로 돌아서는 등 디플레 탈출의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다.
아베 총리는 19일 국회 답변에서 당초 예측보다는 "유감스럽게도 수출이 늘지 않고 있다"고 '오판'을 인정했다. 이날은 일본 무역수지가 20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는 정부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엔고를 엔저로 전환, 수출을 늘려서 디플레에서 탈출하겠다는 게 아베노믹스의 기본 전략이나 일본 기업들이 과거 엔고를 피해 해외 이전을 추진한 결과 엔저가 돼도 수출은 그렇게 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소비세 인상으로 소비가 줄어들수록 수출이라도 경기를 지탱해줘야 하나 지금처럼 엔저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계속 부진하면 경기 견인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아베 정권은 공공사업에 돈을 쏟아붓는 5조 5천억 엔 규모의 비상 경제 대책으로 경기 위축 등 소비세 인상의 충격을 피해가겠다는 생각이지만 이런 처방전대로 잘 될지는 미지수다.
작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를 단행했던 일본은행도 소비세 인상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추가 금융완화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일본은행은 올 4∼6월기에는 소비세 인상 전의 조기 선착 수요(미리 물건을 사두는 것)에 따른 반작용으로 소비가 줄어들어 경기가 위축되겠지만 7∼9월기에는 다시 성장 궤도로 되돌아갈 것으로 비교적 낙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추가 금융완화 없이 끝나지만, 국내 경기가 위축돼 물가상승 목표 2% 달성이 어려워지면 일본은행의 시나리오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시장은 6월 경제상황을 추가 금융완화 단행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소비세를 10%로 2차 인상하는 데 대해서는 경기 지표를 보고 올가을 최종 결단하겠다고 말할 뿐 의중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국회 답변에서 올 11월 발표되는 7∼9월기 국내총생산(GDP)을 소비세 2차 인상 판단 재료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힌 정도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비세를 10%로 추가 인상하기 위해서는 GDP 성장률이 2∼3%가 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계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이 소비세 인상 후의 경기 부양에 실패할 경우 국내 경제는 물론 아베 정권 지지율도 동반 추락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소비세 인상의 치명상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구체적으로 올 4∼6월은 소비세 인상 여파로 경기가 나빠질 수밖에 없겠지만 7∼9월에 경제를 다시 회복궤도로 되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아베 정권이 경기 반전에 실패한다면 아베노믹스가 지탱해온 정권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정권 앞날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올여름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헌법 해석 변경 등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지율과 경기 선순환을 통한 디플레 탈출이라는 구체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본 언론들은 소비세 인상으로 지금의 경기 회복세가 꺾인다면 아베 정권 기반도 흔들리고 아베 총리가 재선을 노리는 내년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