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정부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측은 이날 마닐라 시내 대통령궁에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과 무라드 에브라힘 MILF 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협정 서명식에는 오랜 기간 협상 중재역을 맡아온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등 국내외 인사 1천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협정으로 MILF는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무장투쟁을 철회하는 대신에 2016년까지 필리핀 남부에 독자적인 의회와 경찰력, 과세권을 갖는 '방사모르 자치지역'을 설립하게 된다.
방사모르 자치지역은 남부 5개 주(州)와 2개 도시, 36개 마을로 필리핀 전체 영토의 약 10%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ILF는 이번 평화협정에 따라 자체 병력을 "점진적"으로 해체하고 독자적인 경찰을 창설해 필리핀 군경의 치안유지 기능을 넘겨받게 된다.
아울러 지방세 등 전체 세수와 관할지역 매장 광물의 75%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 한편 주변 12해리 이내에 위치한 어장 관리권도 넘겨받는다.
다만, 국방과 외교, 통화관리, 국적 등은 종전처럼 중앙정부의 영역으로 남게 됐다.
양측의 평화협정이 내년 초 필리핀 의회에 이어 해당 지역 주민투표를 통과하면 15명으로 구성된 '방사모르 과도행정기구'가 지역의회 출범 때까지 가동될 예정이다.
이번 협정과 관련해 아키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협정으로 향후 필리핀 전체의 평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잘리 자파르 MILF 부의장도 "이번 평화협정으로 남부 민다나오 지역의 내전이 막을 내릴 것"이라며 적잖은 의미를 부여했다.
양측은 무려 17년에 걸친 협상 끝에 지난 1월 이슬람 자치권 인정과 권력분점, 1만 1천여 명에 이르는 MILF 병력의 무장해제 등에 관한 4개 평화협정 부속문서에 극적으로 합의하고 최근까지 실무협상을 벌여왔다.
양측은 평화협정 서명에 이어 올 연말까지 '방사모르 기본법'을 의회에 상정, 통과시키는 등 자치지역 신설을 위한 준비 절차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기독교 계열의 현지 정치세력이 강력 반발할 소지가 남아 있는데다 MILF 이탈세력이 무장투쟁을 선언해 최종 평화정착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특히 MILF 지도부의 협상노선에 반발한 '방사모르 이슬람전사단(BIFF)'이 올들어 정부군과 교전을 벌여 수십 명의 인명피해를 내는 등 평화정착 전망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관측통들은 평화협정 당사자인 아키노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2016년 중반까지 협정 이행을 보장할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 반군조직 MILF는 지난 40여 년간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벌여왔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 12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지역경제가 마비되는 등 적잖은 피해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