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4라운드가 열린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이 경기는 선수 한 명의 투입으로 양 팀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루한 0의 행진이 계속되던 후반 12분. 서울은 최전방 공격수 박희성을 불러들이고 윤일록을 투입했다. 데얀(장수 세인티)과 하대성(베이징 궈안)이 떠난 서울을 새롭게 이끌어야 하는 막중함 책임을 맡은 윤일록의 등장에 그라운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윤일록의 투입 이후 서울은 완벽하게 경기를 장악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 고요한의 머리에서 고대하던 서울의 리그 첫 골이 터졌다. 윤일록 본인도 그라운드를 밟은 지 15분 만에 그림 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서울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동료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도 윤일록은 조용히 하늘을 쳐다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자신의 골을 헌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윤일록의 골 세리머니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사실 윤일록은 지난 21일 조부상을 당했다. 23일 부산 아이파크와 경기를 앞둔 만큼 동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저 최용수 감독에게 허락을 얻어 전남 나주에 차려진 빈소로 향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신을 아꼈던 할아버지의 빈소를 오래 지킬 여유가 없었다. 그는 하루 만에 서울로 돌아와 정상 훈련을 소화했고, 다음 날 부산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해 풀 타임 활약했다. 하지만 골을 넣지 못했고, 팀도 패했다.
3일 뒤 다시 기회가 왔다. 제주와 경기에 후반 교체 투입된 윤일록은 멋진 중거리슛으로 시즌 첫 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골을 헌정하며 가슴 속 응어리를 풀었다.
경기 후 윤일록은 "할아버지께서 어려서부터 워낙 잘 챙겨주셨다. 시즌 개막하기 전 잠시 찾아뵙고 왔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 몰랐다"면서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가슴이 아팠다. 팀이 힘든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큰 선물을 주신 것 같아 다른 어떤 골보다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선물로 팀에 귀중한 리그 첫 승을 선물한 윤일록은 100일도 남지 않은 월드컵 출전 욕심보다 하루빨리 팀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팀에 더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골도 넣고 리그에서 첫 승도 거둬 기쁘다"는 윤일록은 "좋은 선수들이 많이 팀을 떠났지만 내가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새로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나누겠다.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