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수 세기 동안 이탈리아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던 교황청의 기득권 세력이 점차 그러나 확실하게 약화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언론들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현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 전임 베네딕토 16세(독일) 교황과 고 요한 바오로 2세(폴란드) 교황 등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이탈리아가 아닌 외국 출신이 교황 자리를 맡아왔지만, 전통적으로 바티칸의 행정조직(일명 쿠리아)을 장악한 세력은 이탈리아 출신들이었다.
또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 요한 바오로 2세 등은 가톨릭 교회의 내부 권력 다툼에서 자칫 화를 입을 것을 우려해 `말벌들의 벌집'은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미 출신으로 처음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세계 여러 나라의 새로운 사람들을 교황청 요직에 임명하면서 교황청 내 기득권 세력에 고통을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가톨릭 교회 내 아동 성추행 근절 대책위원회 위원 8명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들로 구성하면서 이탈리아 출신은 단 1명만 임명하는 등 이른바 `쿠리아와의 충돌을 향한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4월 쿠리아 개혁을 위해 8명의 추기경으로 구성한 위원회, 이른바 G8은 물론이고 바티칸은행 등 바티칸의 경제개혁을 위한 경제위원회에도 이탈리아 이외 다른 나라 추기경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의 한 논평가는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쓴 글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정부의 주요 업무를 로마 주민이 아닌 비 이탈리아인에게 맡김에 따라 스스로 부패와 관료주의 등으로 물든 쿠리아의 전통적 권력과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길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지도부에는 속하지 못했던 평신도와 여성들도 점차 새로운 위원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바티칸 행정조직에 대한 구체적 조사를 하는 임무를 띤 위원회에는 여성 1명을 포함해 7명의 평신도가 포함됐고, 아동 성추행 대책위원회는 5명이 평신도이고 이 중 4명이 여성이다.
아동 성추행 대책위 위원으로 임명된 아일랜드 출신 여성인 마리 콜린스는 13살 때인 1960년대 후반 한 신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이후 아동 성추행 예방 및 소아애(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도착) 희생자를 위한 활동을 펼치는 사회 운동가이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의도적으로 이탈리아 출신들을 차갑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회의 사무총장 등 적어도 두 개의 중요한 자리에는 이탈리아 출신 성직자를 임명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전히 권력을 바티칸에서 분산시키고 다양화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이탈리아 출신 기득권 세력의 입지는 계속 좁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