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9)씨는 지난달 7일 남자친구의 친구 B씨(36)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 B씨를 만나 즐겁게 대화하고 술잔을 기울였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함께 있던 남자친구는 술에 취해 잠이 들어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진 A씨 본인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였다.
그러나 술을 마신데다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까지 복용한 A씨는 구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고, B씨는 범행을 계속 부인했다.
혐의 입증이 난항에 빠진 상황에서 대검찰청 디지털 포렌식센터(DFC) 소속 진술분석관 2명이 긴급 투입됐다.
분석관들은 A씨와 면담해 피해 경위를 파악했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A씨의 진술을 면밀히 분석한 뒤 신빙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수사 검사들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다시 B씨를 강도 높게 추궁했고,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B씨는 지난달 28일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진술분석은 피의자나 피해자, 참고인의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심리 분석 등을 통해 밝혀내는 첨단 과학수사 기법이다.
A씨의 경우처럼 진술 외 증거가 많지 않은 사건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대검은 자칫 미궁에 빠지기 쉬운 사건 수사에 중요한 도구가 되는 진술분석을 강화하는 내용의 '아동 및 장애인 대상 성폭력범죄 진술분석 강화방안'을 한 달간 시범 실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에서 중요한 아동이나 장애인 대상 성폭행 사건에서 진술분석관이 곧바로 현장을 찾아가 초기부터 적극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동이나 지적장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기소부터 재판까지 진술의 신빙성이 늘 문제가 되고, 이 때문에 무죄판결이 나는 경우도 많아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검찰은 진술분석을 적극 활용해 이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방침이다.
또 피해자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을 겪어 진술에 어려움을 겪는 사건에도 진술분석관들이 도움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제까지는 일선 검찰청에서 혐의 입증이 힘든 사건은 일단 기소중지 처리한 뒤 피의자·피해자 진술서를 대검으로 보내 분석하고 진술분석관이 면담해 돌파구를 찾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새 방식은 수사 실무 중심에 진술분석을 활용한다. 진술분석은 수사가 한계에 부딪힌 뒤에야 찾는 '식은 반찬'이 아니라 '생생한 활어'로 쓰인다.
수사는 기소중지 없이 진행돼 사건 처리 속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대검은 또 13명의 진술분석관이 전국 검찰청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건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사정을 감안해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과학수사담당관과 진술분석관 등으로 구성된 '5인 위원회'에서 사건의 중요도를 고려해 진술분석 요원을 선별 지원할 방침이다.
아동·장애인 성폭력 사건에는 분석관을 모두 투입하되 일반 사건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진술분석이 필요한지를 심도 있게 따져 결정한다.
대검은 한 달간의 시범실시를 거쳐 5월부터 새 방안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최성진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은 "사회적 약자인 지적장애인이나 어린이는 성인보다 진술이 미흡해 수사가 어렵다"며 "이런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는 진술분석을 강화하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