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미일회담 합의하자 또 '고노담화 흔들기'

소비세인상 앞두고 지지층 결속 목적인듯…한일간 신뢰에 타격 예상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한미일 정상회담(현지시간 25일, 네덜란드 헤이그) 개최에 합의하자마자 또다시 '고노(河野)담화 흔들기'에 나섰다.

고노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로, 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측근으로,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를 맡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중의원 의원은 23일, 정부 차원에서 실시할 고노담화 검증에서 담화 내용과 다른 사실이 나오면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된 지 이틀 만에 나온 발언이다.

하기우다 특보는 아베 총리의 '복심'으로 통한다. 그는 아베 총리의 연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예상하던 이들이 많지 않았던 작년 10월, "아베 총리가 취임 1년 이내에 반드시 참배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고, 이 '불길한 예언'은 아베 총리의 취임 1주년인 12월26일 정확히 실현됐다. 하기우다 특보의 발언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새로운 담화 발표는 사실 '담화 수정'과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아베 총리가 지난 14일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결정적 계기가 돼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일 3자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한 것을 생각하면 결국 아베 정권으로선 원하는 바(3자 정상회담)을 얻자마자 다시 고노담화 흔들기에 나선 양상이다.

물론 하기우다 특보가 정권 내부의 조율없이 개인적인 생각을 밝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측근을 통해 민감한 현안에서 '속내'를 드러낸다는 의심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아베 총리의 보좌관인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참의원이 아베 총리의 작년 말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실망했다'며 반발한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제작, 공개한 일이 있었다. 에토 보좌관은 결국 동영상을 내렸지만 아베 총리와 그 주변의 분위기를 대변한 것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아베 정권이 파문이 예상될 것을 알면서도 '봉인'하는 듯했던 고노담화를 다시 흔드는 것은 결국 내달 1일 소비세율 인상을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확실한 '원군'으로 붙들어 두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말 고노담화 검증 방침을 천명한 이후 외교적 파장이 일자 고노담화 계승 입장을 밝힌 아베 정권으로선 우익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군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을 배려했다'는 인식이 지지층 안에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베 측근을 내세워 '우리 마음은 변치 않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고노담화 흔들기의 배경이 '국내용'일지라도 한일외교의 맥락에서는 한일관계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 일본의 '속내'가 의심받게 된 만큼 조만간 개최하기로 한 군위안부 관련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질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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