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K가 지역방어나 전면강압수비 등 어떤 수를 써도 양동근은 여유있게 대처하며 정상급 포인트가드의 위엄을 과시했다.
하지만 양동근은 끝까지 겸손했다. 들어보니 이유가 있다.
23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1차전에서 모비스의 71-62 승리를 이끈 뒤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동근은 "준비한대로 했다", "모든 게 준비됐던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먼저 SK의 3-2 지역방어 공략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에 대해 양동근은 "예전과 다른 점은 없다. 완전히 똑같다. 다 준비됐던 것이다. 다만 슛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차이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양동근이 잘 깼다"며 "프리랜스 공격으로 깨라고 하면 어려워하니까 2,3가지 옵션을 주면 그걸 이행하면서 할 수 있어서 양동근이 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동근은 SK가 3쿼터 들어 선보인 전면강압수비를 여유있게 돌파한 것에 대해서는 "약속된 플레이대로 했다. 비시즌 때부터 준비한 것이다. 플레이오프라고 달라지는 것 없이 그동안 했던 것을 뽑아서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필요할 때마다 맞춤형으로 뽑아서 쓴다. 목 마를 때 원하는 음료수를 뽑아 마실 수 있는 자판기를 연상케 한다. 모비스가 자랑하는 '전술 자판기'다.
모비스는 정규리그에서 SK에 2승4패로 뒤졌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다. 정규리그에서는 SK를 상대로 고전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4연승을 달리며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유재학 감독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나도 선수들에게 물어보고 싶다"며 "특별하게 따로 준비한 것은 없다. 정규리그 때 하던 수비를 계속 쓰는 것인데 더 정교해졌다. 자꾸 하다 보니까 타이밍과 움직임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사전에 준비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올 때 저렇게 대처한다는 매뉴얼이 존재하한다. 선수들은 시즌 전부터 끊임없는 반복 훈련을 통해 매뉴얼을 숙지한다. 상황에 맞게 마치 자판기에서 뽑아내듯이 연습된 움직임을 활용한다.
물론, 선수들의 전술 이행 능력도 탁월하기에 모비스의 '전술 자판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유재학 감독은 2쿼터 마지막 순간 굉장히 아쉬워했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팔을 휘젓는 등 동작이 컸고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미소를 띄었다.
모비스는 11초를 남기고 작전타임을 요청, 패턴에 의한 공격을 시도했다. 오른쪽 베이스라인에서 박구영에게 오픈슛 기회가 주어졌다. 박구영은 골밑 돌파로 상대의 허를 찌른 뒤 로드 벤슨에게 절묘하게 패스를 했다. 벤슨은 슛 동작 반칙을 당하며 슛을 놓쳤다.
유재학 감독은 "상대를 다운시킬 수 있는 공격이었고 완벽한 찬스였는데, 앤드원(야투 성공에 반칙에 의한 추가 자유투까지 넣는 것)을 해도 시원찮을텐데 그걸 못 넣었으니 아쉬웠다"며 웃었다.
시키면 바로 한다. 선수들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꽉 짜여진 팀이다. 양동근이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게 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