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년 사이 심석희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첫 올림픽 출전에서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따냈고, 이후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소속사(IB월드와이드)까지 생겨 일정을 챙긴다. 이번 기사는 1년 전 갓 여고생이 독자들에게 했던 약속과 그 성과를 점검하는 애프터서비스이자 더욱 창창해진 그의 미래를 조명하는 '제 2탄'이다.
▲'우상과 꿈같은 데이트' 달라진 위상
심석희는 요즘 바쁘다.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루 그냥 편히 쉬고 싶다"고 할 정도로 방송 출연, 봉사 활동 등 스케줄이 빡빡하다. 인터뷰 중간 일반인들의 사진 촬영 요청까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본인도 실감한다. "올림픽이 크긴 큰가 봐요. 금메달 자체도 뿌듯한데 이렇게 알아봐 주시니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서 수다도 떨었고, 인터뷰 전날(20일)에는 우상인 톱스타 김우빈과 저녁도 함께 했다. "금메달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는 17살 소녀의 꿈같은 시간이었다.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개인으로도 많이 달라졌다. 느리고 어눌했던 말투는 폭발적 스퍼트만큼은 아니더라도 속도가 붙었고, 세련돼졌다. 올림픽과 그 이후 숱한 인터뷰로 말솜씨가 늘었다. "낯가림이 정말 심한데 기자님은 올림픽 때도 많이 봐서 편해졌어요. 지금은 내 생각에도 많이 좋아졌어요." 1년 전보다 키도 1cm 더 컸다는 말에 "176cm는 절대 아니에요" 손사래까지 친다.
▲'뿔테 안경과 트레이닝복' 굳건한 초심
어미새의 뿌듯한 마음 한편으로 슬며시 걱정도 든다. 허파에 바람이 들듯 이른바 '연예인병'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다. 큰 국제대회에서 갑자기 유명인이 된 후유증으로 부침을 겪은 선수들을 꽤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석희는 다를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초심을 버리지 않는 자세는 외양에서부터 굳건하다. 당초 이번 인터뷰 때 심석희에게 평상복을 요청했다. 그동안 훈련과 경기 모습을 많이 접한 만큼 선수에서 일상으로 돌아간 다른 모습을 보고 싶었던 까닭. 그러나 심석희는 굳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왔다. 인터뷰 뒤 곧바로 소화할 훈련 때문이었다.
인터뷰 장소도 집 주변의 평범한 이른바 '동네' 커피숍. 화려한 강남의 대형 건물이 아니다. 인터뷰 중간 동네 어르신들이 들어오는 정겨운 곳이다. 소속사가 아닌 아버지 심교광 씨(51)가 정한 장소다. 딸의 성장을 위해 회사도 포기한 채 고향 강원도를 등지고 상경한 맹부삼천지교의 심 씨다.
이제 여고 2학년, 한창 외모에 관심이 있을 나이. 그러나 바꿀 생각은 없다. 운동에 하등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초교 2학년 때 안경이 너무 쓰고 싶어서 껴왔어요. 렌즈는 불편해서 운동할 때도 고글을 써요. 다른 안경도 써보고 관심도 있지만 편한 건 뿔테죠."
그나마 1년 전과 달리 테 안쪽에 살짝 연녹색이 가미됐다. 그래도 뿔테의 검은 주축은 변함이 없다. 어쩌면 안경은 뿔처럼 고집스러운 심석희 초심의 상징인 셈이다.
▲'영웅 3부작' 완성, 평창올림픽 기대감
1년 전 태릉에서 만났던 심석희는 자신의 꿈인 올림픽 금메달을 말했다. 그리고 이뤘다. 소치 대회 여자 3000m 계주에서 마지막 한 바퀴 폭발적 스퍼트로 숙적 중국을 따돌리고 역전 우승을 이끌며 감동을 안겼다.
일주일 전인 17일 캐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1000m, 1500m, 슈퍼파이널 3000m 3관왕에 오르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올림픽 개인전 은(1500m)과 동메달(1000m)은 물론 1년 전 인터뷰 직후 헝가리 세계선수권 종합 3위의 아쉬움을 훌훌 털었다.
이른바 '전율 스퍼트'는 이제 뿔테 안경처럼 심석희의 전유물이 됐다. 두 가지 의문점은 '모두 지치는 장거리 경기 막판 어떻게 저런 속도가?' '그렇다면 올림픽 개인전에서는 왜?'였다.
"먼저 체력이죠.(최광복 대표팀 감독은 "남자 선수들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은 마음이에요. 올림픽 계주 때는 3바퀴 남기고 역전당했을 때 사실 '끝났다'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1초 만에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고 무조건 달렸죠. 슈퍼파이널 때는 전략도 있었지만 소치에서 다짐한 독한 마음이 나온 건가 봐요.(심석희는 올림픽 1000m 경기로 개인전을 노 골드로 마감한 뒤 "더 독해져야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1년 전 심석희는 "잠깐 반짝하는 스타보다 영웅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아직 심석희의 영웅담은 절반만 쓰여졌다. 아직까지 쇼트트랙 '차세대 여왕'에서 차세대를 빼기도 머뭇거려진다. 2회 연속 올림픽 2관왕 전이경, 3관왕 진선유 등 선배들처럼 다관왕이 되지는 못한 까닭이다.
"지금 평가가 맞겠죠.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배트맨처럼 그저 쫄쫄이만 입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대단한 일을 하면 주위에서 영웅으로 인정을 해주는 거잖아요?"
1년 전 인터뷰가 '영웅의 탄생'이었다면 이번 주제는 '영웅의 성장' 정도가 될 것이다. 2018년 평창 대회 이후 있을 제 3탄 '영웅의 완성' 편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