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FATCA(해외금융계좌납세협력법)와 함께 17일(현지시간)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양국 국세청은 한국 내 미국인, 미국 내 한국인의 일정규모 이상 계좌 정보를 내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자동 교환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탈세가 의심되는 계좌를 지목해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정보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정보가 대거 자동 교환돼, 조세당국이 역외 탈세를 추적하기 쉬워진 것이다.
과세 신고를 하지 않고 양국을 오가며 호화생활을 해 온 부유층은 국세청의 감시망에 들어오게 된다.
◇ 금융계좌 정보교환 대상과 방식은
미국 내 한국인의 경우, 연간이자가 10달러를 초과한 예금계좌와 미국 원천소득과 관련된 기타금융계좌 정보가 자동으로 한국 국세청에 통보된다.
현재 미국 예금 최저금리가 약 연 0.1%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약 1만달러(약 1천70만원) 이상 예금계좌, 펀드, 금융상품 등이 모두 이 기준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한국 법인은 금액 제한 없이 모든 계좌 정보가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한국 내 미국 영주권자·시민권자 등 미국인은 5만달러 초과 금융계좌 정보가 자동 교환 대상이다. 다만 저축성 보험은 계좌 잔액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만기시 해지환급금이 25만달러 이상이면 미 국세청에 통보된다.
한국 내 미국 법인의 경우 25만달러를 초과하는 계좌는 미 국세청에 통보되는데, 올해 7월 이후 개설되는 신규계좌는 금액과 상관없이 정보 자동교환 대상이 된다.
양국 은행과 금융투자회사, 보험회사 등 금융기관은 전년도 말 기준으로 대상 계좌정보를 자국 국세청에 보고하고, 양국 국세청은 내년부터 이 정보를 매년 9월까지 상호 교환한다.
금융기관은 국적과 주소, 출생지, 전화번호 등을 통해 계좌 소유자를 식별하는데, 만약 국적이 모호한 경우에는 국세청에 보고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직접 연락해 실사를 거칠 계획이다.
◇ 자산 은닉·세금 탈루 어려워진다
한국은 그동안 110여개 국가와 조세정보 교환협정을 체결했지만, '자동' 교환협정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탈세가 의심되는 계좌를 지목해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상대국으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미국과는 이런 절차 없이 대상 계좌 정보를 한 번에 교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 계좌를 만들어 놓고 거액의 자산을 숨기거나 세금을 탈루해 온 경우가 대거 적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세청은 2011년부터 해외계좌신고제에 따라 연중 하루라도 10억원 이상의 잔액이 있었던 해외금융계좌를 다음해 6월까지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미신고시 50억원 이하 계좌는 계좌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고, 50억원 초과 고액 계좌는 계좌 금액 10%를 벌금으로 내거나 2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이번 미국과의 협정으로 한국 국세청이 들여다볼 수 있는 미국 내 한국인 계좌 규모가 10억원 이상에서 약 1천만원 초과로 대폭 확대된다.
또 10억원 이상의 고액 계좌 중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아 파악이 어려웠던 계좌 정보도 대거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외국에 10억원 이상의 금융계좌를 보유한 개인과 법인은 678명이며, 이들은 6천718개의 계좌에 22조8천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세청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해외계좌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고율이 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양국간 조세정보 교환이 자동으로 이뤄지면 미국내 혹은 한국내 미신고 계좌가 상당수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다.
내년부터 정보 교환이 시작되면 미신고 계좌들은 과태료를 피해갈 수 없게 된다. 다만 올해 기준 계좌 정보는 신고 기한인 내년 6월까지 자진 신고하면 과태료는 부과받지 않는다.
미국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도 한국에 이번 협정 대상에 해당하는 계좌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미국 국세청에 정보가 자동으로 넘어가 자산을 숨기는 것이 어려워진다.
한명진 기재부 조세기획관은 "이번 협정이 역외탈세 추적에 크게 도움이 되고 해외금융계좌신고제의 실효성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