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접경지역 '살벌'…우크라 길목 완전 차단

도로엔 군용트럭·장갑차 질주…"우크라인, 크림 진입 엄두도 못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 공화국의 러시아 편입 조약에 전격 서명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접경 지역엔 살벌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날 오후 크림반도 수도 심페로폴을 출발해 북쪽으로 난 2차로를 따라 접경 지역 쪽으로 차를 달리자 번호판을 떼낸 병력 수송용 군용트럭과 연료용 탱크를 탑재한 군용트럭들의 모습이 수시로 목격됐다. 중무장한 병사 여러명을 태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장갑차도 눈에 띄었다.

도로 옆엔 '마이단(친서방 혁명)은 안 된다. 외국 간섭은 안 된다'는 글귀가 적힌 대형 간판도 군데 군데 세워져 있었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소도시와 마을 앞 전주엔 흰색-청색-적색 3색의 러시아 국기와, 비슷한 문양의 크림 국기가 나란히 나부끼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서 야전포병 부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훈련을 하는 모습도 보였으며 전투기들이 하늘을 선회하는 광경도 목격됐다. 마치 한국 휴전선 인근의 마을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달리자 우크라이나 대륙 남단 헤르손주(州)와 맞닿은 아르미얀스크 지역이 나왔다. 크림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 대륙으로 진입하는 초입이고 우크라이나 쪽에서 보자면 반도로 들어오는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아르미얀스크에서 대륙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두 갈래로 나뉘어 왼쪽 길은 헤르손주 주도 헤르손으로, 오른쪽 길은 헤르손주 카호프카시로 연결돼 있다.

먼저 왼쪽 갈래 도로를 따라 서서히 이동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중간에 콘크리트 차단벽이 설치된 검문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 1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남겨둔 차단벽 앞에선 중기관총을 든 군인 여러명이 통과하는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었다. 운전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트렁크를 열어 안을 샅샅이 살폈다.

일부 군인들은 옛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 특수부대 '베르쿠트' 복장을 하고 있었고 다른 군인들은 아무런 표식이 없는 국방색 군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엔 모두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다.

검문소 주변에는 장갑차와 군용 트럭들이 여러 대 줄지어 서 있었다. 길옆 언덕 위에도 위장막 속에 숨겨진 탱크와 저격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웬만한 국경 검문소를 뺨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군인들은 기자가 탄 차량이 차단벽 쪽으로 접근하자 중기관총을 자동차 쪽으로 겨냥하며 차에서 내리라고 지시했다. 뒤이어 '어디에선 온 누구냐', '무엇 때문에 왔냐'는 등의 질문을 연이어 퍼부은 뒤 "크림 정부의 허가증이 없으면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차갑게 말했다.

러시아에서 멀리 온 한국 기자라며 잠깐만 촬영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면서 절대 촬영을 하지 말고 서둘러 검문소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첫 번째 검문소에서 쫓겨나 카호프카시로 향하는 도로에 있는 두 번째 검문소를 찾았지만 역시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모스크바에서 일부러 왔으니 간단하게라도 촬영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당국의 허가가 없어 인터뷰는 물론 촬영도 절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쪽으로 통과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거절했다.

기자를 안내한 현지 기사 로마는 "예전엔 하나도 없던 검문소들이 크림 사태 후 새로 생긴 것"이라며 "표식이 없는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러시아 부대 소속이 확실하며 무기와 장비도 다 러시아제"라고 귀띔했다.

그는 "크림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러시아 군인들이 완전히 차단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인들의 크림 진입은 엄두도 못낼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이 취재를 포기하고 검문소에서 멀리 벗어나 주변 풍경을 찍고 있는데 난데없이 표식없는 군복에 검은 복면을 한 건장한 군인 1명이 차를 타고 다가와 다짜고짜로 카메라맨의 촬영을 저지하며 찍은 영상을 다 지우라고 험한 말투로 요구했다. 기자와 운전기사는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협박했다. 몇 컷을 지우는 시늉을 하고 서둘러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심페포롤 시내에선 러시아계 무장 세력이 우크라이나 군부대를 공격해 우크라이나 하사관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언론은 푸틴 대통령의 크림 합병 조약 서명 이후 크림 내 러시아 군인들의 공세가 거세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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