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고인은 17세에 헤이룽장성 하이룬현에서 안 의사의 사촌 동생 홍근(洪根)씨의 3남 무생(武生)씨와 결혼했다가 14년 만에 일제의 앞잡이에 의해 남편을 잃고 홀로됐다.
이후 삯바느질로 끼니를 연명하면서 태극기와 안 의사의 초상화를 들고 거리에서 안 의사의 공적을 알리는데 발 벗고 나섰다.
한국전쟁 이후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1958년 고인은 중국 당국에 의해 반혁명분자로 체포돼 네이멍구(內蒙古)의 노동교화감옥 등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98년에야 풀려났다.
자유의 몸이 됐지만 거처가 없어 하얼빈 성당 등지를 전전하던 2000년 우연히 알게 된 최선옥(76·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원장) 수녀에 의탁해 하얼빈에서 생활해왔다.
최 수녀는 "안 할머니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 의사의 순국일을 기억하고 집안 족보를 외울 만큼 정신이 또렷했지만, 지난해 9월부터 노환으로 건강이 부쩍 나빠졌다"고 말했다.
고인은 오는 20일 중국 지린성 창춘(長春)의 천주교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