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사적 자문기구의 보고서를 토대로,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헌법해석을 바꾸는 '간단한 절차'만으로 전후 일본이 70년 가까이 유지해온 안보 정책을 변경하려 하는 데 대해 자민당 안에서 이견이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민당은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앞세워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선거에서 연전연승하는 동안 '정고당저', '아베 1강' 등의 지적에도 숨죽이고 있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18일자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고가 마코토(古賀誠) 전 자민당 간사장은 17일 요코하마에서 행한 강연에서 '헌법 해석의 책임자는 나'라는 아베 총리의 국회 답변에 대해 "자신이 총리이고, 권력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도련님(일본어로 '봇짱')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봇짱'은 전직 총리(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와 같은 정치 명문가 출신의 '세습 정치인'을 비꼬아 부르는 표현이다.
고가 전 간사장은 헌법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 자위권 행사 방안에 대해 "그런 임시변통적인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며 개헌을 통한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7일 9년 만에 열린 자민당 총무간담회(의견이 엇갈리는 중대 사안을 주제로 결론도출 없이 자유토론하는 회의)에서 발언한 20명 중 아베 총리의 집단 자위권 추진 방안에 찬성하는 이들은 몇몇에 그쳤고 대세는 '신중론'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회의에서 미조테 겐세이(溝手顯正) 참의원 의원은 "정부의 전문가 간담회(아베 총리의 사적 자문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 보고서가 정부 정책으로 취급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또 와키 마사시(脇雅史)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은 "이상은 좋지만 현실을 기초로 해야 한다"며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개별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후나다 하지메(船田元) 자민당 개헌추진본부장은 "집단 자위권이 인정되는 경우는 한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아베 총리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견해도 나왔다. 무라카미 세이치로(村上誠一郞) 전 행정개혁담당상은 "(관련 법안이 나오면) 회의장에서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해석 개헌이 아니라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를 반영, 아베 총리는 6월22일까지인 정기국회 회기 안에 집단 자위권 관련 헌법해석을 변경한다는 계획을 뒤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집단 자위권 추진 일정에 대해 "언제까지라는 기한을 두지 않고 우선 전문가 회의(안보법제간담회)의 논의 결과를 기다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각의 결정을 통한 헌법 해석 변경', '관련 법정비까지 연내 마무리' 등 큰 틀은 바꿀 생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측통들은 아베 총리가 내달 소비세 인상(5→8%)이라는 중대 사안을 앞둔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한 채 집단 자위권과 관련한 당내 여론을 정면 돌파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자민당을 돌파하더라도 연립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이 여전히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집단 자위권 행보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