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잡지사 사진편집자로 일하는 딸이 "엄마, 나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냉전체제 이후 최대 동서갈등으로 불리는 크림자치공화국 독립투표가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도 초래, 새로 그어질 국경선의 어느 쪽을 택할지를 강요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크림 독립문제는 "때로는 인종 갈등보다는 세대 갈등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세바스토폴에서 작은 아동복 가게를 운영하는 갈리나 같은 중년 세대에는 이번 주민투표가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서 벗어나 더 편했던 소련시절로 되돌아갈 기회를 의미한다.
갈리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늘 이렇게 살았고, 아무도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변변한 대통령이 없었다"며 "하지만 러시아에는 제대로 일을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말했다.
갈리나는 "집으로, 엄마, 아빠, 친척,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소련 시절 같을 것 같고, 어쩌면 더 좋을 것도 같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갈리나 같은 세대 중 상당수는 소련 붕괴를 치욕과 고생을 가져온 비극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갈리나 같은 사람들은 지난 16일 투표장에 가서 러시아로의 병합을 지지하는 한 표를 흔쾌히 행사했다.
모스크바 동쪽 키로프 지방에서 태어난 갈리나는 7살 때 크림반도로 이주했지만 첫 남편과 모스크바에서 여러 해를 살았고, 1985년 군인이던 두 번째 남편과 함께 크림반도로 돌아왔다.
최근 크림반도에 나타난 러시아군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위협에서 신변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친러시아계 크림 자경단의 논리를 받아들여 "우리가 그들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투표 때는 1989년생인 딸에게 좀 더 안정된 미래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찬성표를 던졌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소련시절 보석 같던 세바스토폴이 러시아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갈가리 찢기는 것을 목격한 그는 1990년대의 고생을 떠올리면서 "살아남으려고 무엇이든 했다. 무법천지였다"고 돌아봤다.
갈리나는 세바스토폴에서 벌어지는 분리반대 시위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반대하지 않지만 권력자들이 나쁘다. 그들은 역사를 파괴한다"는 친러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반면, 딸 율리야는 이번 투표가 불법이라는 서방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투표에 불참했다.
20대 중반인 율리야는 세바스토폴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우크라이나어를 배웠지만 어머니와는 러시아어로 소통한다.
그렇지만 그는 "나는 러시아계이고 우리 부모님도 러시아계지만, 나는 우크라이나인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자라 학교를 다녔고,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요즘 상황을 보면서 내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러시아는 완전히 독재다. 한마디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도망칠 수 없는 상자 속에 사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어린 세대에 좋은 기억을 주지 못하고 가난만 줬다"는 어머니 갈리나의 지적에도 "아파트 난방이 잘되지 않던 기억은 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가난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3개월간 지속한 반정부 시위에 종종 합류했다는 율리야는 "세바스토폴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한다"며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른 에너지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며 "사진이나 정보도 소용이 없다. 우리 엄마는 나를 믿지 않고 푸틴과 러시아 TV만 믿는다"고 말했다.
율리야는 크림이 분리독립하더라도 매년 세바스토폴을 찾을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여권을 소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러시아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칙이기 때문"이라며 "지금 벌어지는 일은 해적의 습격과 비슷하다. 자기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빼앗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