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위에서 北대사 항의 퇴장

日 납치 피해자 가족 발언권에 반발

1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서세평 제네바대표부 대사가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최종 보고서를 둘러싼 각국의 공방 과정에서 항의 퇴장하는 등 회의장에 첨예한 대결 분위기가 연출됐다.

유엔 인권위의 이날 회의는 오전 9시 마이클 커비 위원장이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며 연설을 하고 이어 보고서에 대한 각국 대표들과 비정부기구(NGO)들이 의견 개진을 하는 순서로 짜여졌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커비 위원장이 북한의 인권상황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짓고 이를 독일의 나치, 남아공의 인종차별,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와 비교하며 즉각적인 북한 인권개선을 촉구하면서 회의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커비 위원장은 나아가 "사회적 인종차별인 `성분' 시스템을 폐지하고 개인 우상화나 선전에 투입하는 모든 가용한 자원을 굶주림과 영양실조를 없애는 데 먼저 사용하라"고 북한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중국에도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존중해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강제로 되돌려보내지 말고 적절한 보호를 하라"고 촉구했다.

커비 위원장의 연설이 끝나자 중국은 "탈북자들은 경제적 이유로 불법 입국한 범법자"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며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고 증언만을 기초로 한 북한 인권보고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북한 서세평 대사도 "오늘도 국내외적으로 제도적인 인권유린을 일삼는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의 범죄행위부터 마땅히 조사해야 한다"며 "국제형사재판소요 뭐요 하고 말도 되지 않는 생억지를 부리는 것은 우리를 어째보려는 망상으로서 가소롭지 그지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서 대사는 또 "우리는 조사위원회 같은 것을 인정 조차한 적이 없으며 끝까지 반대 배격할 것"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공화국을 반대하는 부질없는 인권소동을 걷어치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이정훈 인권대사는 "이번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고 보고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 보고서를 이행하도록 유엔 메커니즘을 강화하자는 보고서 권고안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인권대사는 또 "탈북자들의 문제와 관련해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모든 국가들이 준수해주기를 촉구한다"면서 "북한도 조사보고서의 권고안을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뒤 로버트 킹 미국 인권대사를 비롯 유럽연합(EU), 프랑스, 아일랜드, 베트남, 포르투갈 등의 대표들은 보고서 내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즉각적인 보고서 이행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이란, 시리아, 쿠바, 베네수엘라 등은 보고서 내용이 이중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일본의 발언 차례에서 오카다 다카시(岡田隆) 일본 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가 발언권을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6)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연락회' 대표에게 넘기면서 회의장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오카다 일본 차석대사는 "북한이 정치범수용소와 납치문제에 대해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 뒤 발언권을 1978년 딸이 북한에 납치된 이즈카 대표에서 넘겼다.

그러자 즉각 북한 측은 유엔 인권위 대표도 아닌 민간에 발언권을 줄 수 없다며 항의하고 나서면서 발언이 잠시 중단됐고, 인권위 측은 일본 대표단 명단에 이즈카 대표도 들어 있어 발언권을 줬다며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

이에 서세평 대사는 강력하게 항의하며 유엔 인권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고 다른 북한 제네바대표부 직원들도 함께 퇴장했으며 북한에서 온 최명남 국제기구국 부국장 등 몇 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즈카 대표는 자신의 여동생 다구치 야에코(田中八重子·납치 당시 22세)가 1978년 일본에서 북한에 납치돼 대한항공 폭파 사건의 범인(김현희)에게 일본어 등을 가르쳤다고 언급했다.

그는 "전세계의 납치 피해자 가족을 대표해 세계적인 규모의 납치를 망라한 보고서를 정리한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에게 감사드린다"며 "모든 납치 피해자가 가족에게 돌아가고 북한의 주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한층 더 노력할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 대사 퇴장 이후 잠시 소란했던 유엔 인권위 회의장은 비정부기구(NGO) 대표들의 발언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난 신동혁씨는 "14살때 어머니와 형이 공개 처형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면서 "북한의 독재자가 자유를 갖고 있다면 북한 주민들도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 씨는 또 "국제사회가 북한에 있는 나의 형제·자매들을 곤경에서 구해주기 바란다"며 "아울러 북한은 일본에서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를 가족의 품으로 귀환시켜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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