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연맹은 17일 낮 서울 모처에서 열린 빙상 담당 기자간담회에서 "전 부회장이 소치올림픽 부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이어 "채환국 부회장, 김관규 전무, 전이경 이사, 이찬희 변호사, 빙상 기자단 간사인 백길현 뉴스와이 기자 등 각계 각층 전문가로 구성된 빙상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조직 운영과 선수 선발, 평창올림픽 준비 등 근본적인 혁신을 도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부회장이 연맹에서 빠지는 것은 지난 2009년 전무로 임원이 된 이후 5년 만이다. 소치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나름 성과를 냈지만 전부 여자 대표팀이 따냈다. 남자 대표팀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12년 만에 노 메달에 머물렀다.
특히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가 8년 만에 올림픽 3관왕에 오르는 등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면서 더욱 대조를 이뤘다.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는 이른바 '오노 사태'의 여파가 있었지만 이번 대회 남자 대표팀은 실력으로도 밀리면서 대표 선발 과정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여기에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가 언론을 통해 아들의 귀화 배경에 파벌 싸움이 있었고, 연맹에 부조리가 팽배했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안 씨는 또 전 부회장을 겨냥해 연맹 고위 임원의 전횡이 극심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안현수의 귀화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라는 엄명까지 떨어졌다. 이후 안현수가 직접 "파벌 싸움이 귀화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면서 "내가 하지 않은 말까지 아버지가 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지만 연맹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가시지 않았고, 결국 전 부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됐다.
▲韓 쇼트트랙 전성기 견인…'작전' 부작용도
전 부회장은 한국 쇼트트랙의 산 역사나 다름없었다. 1987년부터 대표팀 코치로 시작해 2002년까지 감독 등 지도자를 역임했다. 김기훈, 김동성, 김소희, 전이경, 안현수 등을 발굴, 배출하며 쇼트트랙이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발돋움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은 한국의 26개 금메달 중 무려 21개를 따냈다. 지난 2010년 김연아(피겨)와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이상 스피드스케이팅) 이전까지 금메달은 모두 쇼트트랙의 몫이었다. 지도자 시절 이후에도 2009년부터 연맹 전무 등 전 부회장의 주도로 만들어진 성과였다.
하지만 찬란한 성과 뒤에 숨겨진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전 부회장이 도입한 이른바 '작전'의 부작용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상대적으로 열세한 체격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선수들의 '협주'(協走)로 상대 선수들을 견제하는 전술이었다. 한국은 쇼트트랙 강국이 됐지만 이른바 '페이스 메이커' 선수들의 불만도 나왔다.
결국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이었던 안현수를 중심으로 한 파벌 문제가 터졌다. 2010년 밴쿠버 대회 이후에는 이른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른바 '짬짜미' 사건이 불거지면서 쇼트트랙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후 쇼트트랙은 기록이 아닌 순위 종목이라는 지적에도 대표 선발 방식에 기록제를 도입하는 등 자정 노력을 해왔다.
▲안현수 대활약, 남자팀 부진에 유탄
빙상계 일각에서는 "최근 연맹 문제점을 지적한 안기원 씨와 이준호 전 여자 대표팀 감독 등이 배후에는 연맹 재집권을 노린 재야 세력의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면서 "때문에 안현수의 대표팀 탈락은 규정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전 부회장이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전 부회장이 대표팀 선발과 운영은 물론 호의적인 특정 언론에만 선수들의 인터뷰를 허락하는 등 연맹 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지적도 분명히 있었다. 어쨌든 전명규 부회장은 한국 쇼트트랙 영욕의 역사, 그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다만 전 부회장이 어떻게든 복귀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쇼트트랙 주류인 한체대 교수로서 여전히 영향력이 적지 않은 데다 4년 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 성적이 부진할 경우 구원투수로 나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