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서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한 여건이 조성된다면 우리로서는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우리 정부는 대화를 위한 대화보다는 양국 정상간에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기 위한 여건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일본측이 역사인식 문제와 과거사 현안 등에 대해 진정성 있는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진정성 있는 조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여러분들이 판단해 달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의 이런 입장은 아베 일본 총리가 참의원에서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박 대통령이 다행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이후 한국과 일본 언론에서 한일 정상회담 또는 한미일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데 대해 너무 앞서가지 말라고 선을 긋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는 한일 정상회담을 열기에는 일본측의 조치가 아직 미진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에 대해 '검증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여서, 어느 것이 일본의 진짜 속마음인지가 분명치 않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나 의회 지도자들이 심심치 않게 과거 침략역사를 부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독도와 교과서 문제에 대해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말만으로는 침략의 역사를 '변함없이' 반성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이 '스탠딩 미팅'을 하거나 한일정상이 따로 만날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아베 총리의 과거 담화 승계 발언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졌기 때문이다.
한일정상회담에 목말라 있는 일본쪽에서 아베 총리 재임기간에 야스쿠니에 가지 않겠다는 등의 추가적인 '화해 제스처'를 취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만남 자체를 회피하기가 쉽지 않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회의와 10월에 열렀던 에이펙 정상회의, 아세안 +3, 지난 1월 열렸던 다보스포럼에서 박 대통령과 대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