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보다 이익 눈먼 위기의 세태에 경종"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소극적인 수사에 반발해 경찰대 교수직을 내던지고 사회참여지식인으로 변신한 표창원(48)이 최근 책을 냈다. 책 제목은 '정의의 적들'(한겨레출판). '정의는 때로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뜨거운 부제가 붙었다. 표창원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해치거나 짓밟는 힘센 자들과의 싸움에서 줄곧 선봉에 서왔다. 출간 의도를 묻는 질문에 그는 "권력과 국가기관, 정치집단은 물론이고 소위 논객이라 불리는 자들이나 방송과 언론, 그리고 일반 시민들마저 각자 '자신만의 정의'를 주장하고 내세우며 '옳음' 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신간 제목이 '정의의 적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옳은 것'이다. 각자가 주장하는 '자신의 옳음'이 아닌, 법이나 윤리, 도덕, 철학에 근거를 둔 '보편적 옳음'이다. '정의' 중에도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인 '사법적 정의'가 내가 천착하는 분야다."

-출간 의도를 말해달라.
"권력과 국가기관, 정치집단은 물론이고 소위 '논객'이라 불리는 자들이나 방송과 언론, 그리고 일반 시민들마저 각자 '가지만의 정의'를 주장하고 내세우며 '옳음' 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아울러 돈과 힘 혹은 거짓을 사용해 일정 시간 동안 정의의 실현을 지체시킬 수는 있지만,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공유하고 싶었다."

-책 프롤로그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정의의 위기' 상태로 규정했다.
"'보편적 정의'를 따르지 않고 각자의 입장과 생각만을 앞세운 '상대적 정의론'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고, 특히 그 중에서도 힘 센자와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마음대로 어기고, 범법사실이 드러나도 힘과 돈을 이용해 사법절차마저 왜곡, 유린하는 상황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전관예우와 '정관경법(政官經法) 유착'이 도사리고 있다."


-책에서 우리 사회 정의를 해치는 다양한 사례를 예시했다. 정의의 관점에서 그동안 발생한 각종 사례 중 우리 사회 정의를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 가지만 손꼽아달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을 통채로 짓밟고 유린한 '국기문란' 사건인데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마저 조작과 왜곡에 동원되고, 원칙대로 수사하며 진실을 밝히려던 검찰총장과 검찰 수사팀장은 치욕 속에 사퇴하거나 징계 및 좌천을 당하는 초유의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국가기밀 공개유출 사건이나 이석기 내란음모 및 통진당 해산 청구 사건,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등 역시 이 '국정원 사건'에 대한 합리화 내지 물타기를 위해 행해졌다는 추정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평소 '나는 보수다'라고 당당히 밝혔고, 지난해에는 '보수의 품격'이란 책도 냈다. 진정한 보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 보수로 산다는 것의 현실은 또 어떤가.
"'보수'는 그 사회의 체제와 이념,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태도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민주공화국의 체제와 이념,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헌법적 가치, 선비정신과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고 지키는 동시에, 그 문화와 전통을 시대 흐름 및 국제적 기준에 맞게 고치고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일제 강점과 분단 등 불행한 역사로 인해 친일 및 독재 세력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이 단순하고 공격적인 '반공' 및 '안보' 만을 내세우며 이를 '보수'라고 참칭해 온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보수는 설 자리를 잃었고,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내세우면 오히려 '종북' 혹은 '좌파'로 마녀사냥식 공격을 당하고 있다."

-최근 잇따라 책을 펴내고 있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쓸 생각인가.
"책은 내게 있어 '열심히,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내가 '세상와 소통하는 가장 깊고 자세한 방법'이다. 다음 책은 그동안 전혀 쓰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려고 한다. 여행과 범죄, 추리 등을 접목시킨 아주 재미있는 책을 준비 중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소극적 수사에 반발해 지난 2012년 12월 경찰대 교수직을 내던졌다. 현재의 자유직 전문가의 일에 만족하나. 그동안 해온 일 중 가장 의미 있었다고 자평하는 일은 뭔가.
"현재의 일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고정수입이 없는 '불안감'은 있지만, 그 불안감이 나를 자극하고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동안 방송 진행, 언론 고정 칼럼, 출간, 강연, SNS를 통한 소통, 프리허그 등 해온 일들이 참 많은데,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2013년 1년 동안 전국 및 해외 대도시를 매달 방문하며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무료 순회 대중 강연을 한 것이다."

-일 하지 않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음악, 영화, 독서, 등산, 가족과 대화 그리고 여행 등을 한다."

-함익병 발언 논란 등 최근 트위터 등을 통해 사회적 관심사와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오고 있다.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누리는 '표현의 자유'다. 난 그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내가 느끼는 것을 자기검열 없이 SNS 공간에 털어 놓는데, 많은 분들이 보시고, 때로 언론에서 기사화 하다 보니 화제가 되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페이스 북 등에 긴 글로 자세한 설명이나 근거, 관련 이론이나 사례 등을 제시해 시민들께서 참고하시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역할이 '한 사람의 자유 시민'에서 많은 분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슈나 사람, 사건들이 과장이나 왜곡, 오해, 혹은 흥미거리로 소비되지 않도록 돕는 '지식인'의 역할로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최근 민주당과 안철수 측의 제3지대 신당 창안에 대해 '참신하고 희망적이다'라고 평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깬 '파격적인 통합' 합의 자체를 평가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비대한 권력을 오래 누리다 보니 부패하고 타락한 집권 세력에 맞설 동력이 필요한데, 서로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과 공감대를 먼저 보고 통합을 했다는 점에서 시민들에게도 다시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전망에 대해서는 다소 복잡한 심경이다. 아직 통합의 절차와 과정이 마무리 되지 않았고, 시민의 열망과 시대적 요청, 정의를 위한 공헌과 통합정신에 부합하는 양보와 타협보다 개인이나 소집단의 이익, 계파간 불신과 갈등이 산발적으로 표출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서다.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지도부에 커다란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과 대선개입 의혹 수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정의의 프레임에서 이들 사건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단순화시켜서 말씀드리자면, '반공'과 '안보'라는 자신들의 '절대 가치'를 위해 헌법과 법률, 적정절차 및 공직 윤리를 내팽개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진정 '반공'과 '안보'를 위해서 그랬느냐, 아니면 자신과 소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해 그랬느냐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쉽게 규명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복잡성과 현실성의 한계 속에서 '무엇이 옳으냐'의 문제는 '절차적 정의'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 준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지금처럼 계속 글 쓰고, 말 하고, 강의하고, 방송 출연하며 살아갈 계획이다."

-신간 부제가 '정의는 때로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온다'이다. 정의가 승리할 거란 믿음의 근거는 뭔가. 또 사회 정의를 지키내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역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제 믿음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나치, 일제,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대 독재정권이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 않았나? 완전범죄를 꿈꾸던 사건들 역시 대부분 해결됐다. 그래서 난 불의와 불법 앞에서 결코 조급해 하지 않는다.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말이나 글을 쓰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정의에 조력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후세가 아닌 지금, 사회정의를 지키려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죽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철학적 자극'이 자주 그리고 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각급 학교 교육과 가정, 그리고 언론, 방송, 음악과 문학 영화 등 각종 예술 작품에서 '누구나 죽음을 직면하게 될 것'이고 '정의의 적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극한의 공포와 고통을 겪게 되리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종교 역시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찰, 검찰, 판사와 정치권력자 뿐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가해자나 방관자, 즉 악마와 계약을 맺는 '정의의 적'이 되는 대신에, 두려움을 이기고 방관의 편리에서 벗어나 고발하고 연대하고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정의의 힘'이 강해질 때 비로소 법과 제도, 문화와 관행이 바뀌어 개별적인 범죄나 부패는 발생할 지라도, 구조적이고 일상적으로 불의와 부정이 횡행하지 않는, '사회정의가 확립된 사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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