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총을 든 괴한들이…" 악몽 같았던 순간

한국인 남성 파키스탄에서 납치 하루만에 탈출

파키스탄 거리(자료사진/출처=유튜브)
파키스탄에서 교육 활동을 하던 우리 국민이 현지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다가 하루 만에 탈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사르코다 지역에서 한국어 교육 등 NGO 활동을 하던 김형민(49)씨는 9일 오전(현지시간) 자신의 집 앞에서 무장을 한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당시 김씨는 택시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가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차량 세대가 김씨가 탄 택시를 에워쌌다. 김씨는 영문을 파악할 새도 반항할 틈도 없이 총을 든 괴한들에 의해 순식간에 끌려 내려왔고 복면이 씌워졌다.

그 상태로 1시간 반 가량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심문실이었다. 여기서 김씨는 곧바로 괴한으로부터 사르코다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집중 추궁 당했다. 여전히 눈이 가리워지고 수갑을 찬 상태였다.


두 차례 이루어진 심문 과정에서 괴한들은 김씨가 최근 핵시설이 있는 쿠샤브 지역에 간 이유를 함께 캐물었다. 쿠샤브 핵시설은 1998년부터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등 중수로와 중수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군이 경계하고 있는 시설이며 외국인 출입이 금지되는 지역이다.

김씨는 괴한들에게 "쿠샤브에는 지역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간 것이지, 다른 목적은 전혀 없으며 핵시설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대목 쯤에서 김씨는 괴한들이 몸 값을 노린 탈레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2011년부터 현지에서 생활한 김씨는 탈레반들이 외국인을 납치할 경우 곧바로 대사관이나 가족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씨를 납치한 괴한들은 NGO 활동의 자금 출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돈 얘기를 꺼냈지, 석방을 대가로 금품을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괴한들은 김씨가 한국 정보원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괴한들이 파키스탄 경찰이나 정보당국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수감시설의 환경이 상당히 체계적이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감방 밖에 오토바이 소리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은폐된 지역은 민가와 떨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며 "복면이 풀어졌을 때 살펴보니, 감방에 번호가 매겨져 있고 시설도 정돈이 잘 돼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안 현지 친구들이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하려 했다가 지역 경찰들로부터 "별일 없이 풀려날 것이니 대사관에는 알리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대목도 괴한의 목적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40대 한국인 남성은 2012년 이란에서 경찰과 군 시설 등을 촬영하다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7년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국인이 민감한 자국 정보에 접근했다는 판단에서, 파키스탄 당국이 사실 확인을 위해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음 날(10일) 괴한들은 은행에서 현금을 빼오라며 김씨를 다시 복면을 씌운 채 차에 태웠고, 페슬라바드 지역의 한 은행 앞에 내려줬다. 김씨는 은행에 들어오자마자 도움을 요청하고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에 출국을 요청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괴한들이 김씨를 풀어주다시피 한 것도 이상한 대목이다. 김씨는 출금할 수 있는 현금이 540만원 정도라는 것을 얘기했는데, 이는 석방대가치고는 매우 적은 금액이다. 게다가 탈출 가능성이 높음에도 괴한들은 김씨가 혼자 출금하게 했다. 김씨는 "당시엔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도망가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정황만 놓고 봤을 때, 김씨가 파키스탄 당국으로부터 스파이 혐의 등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가 납치된 시각, 괴한들이 노트북과 데스크탑 등도 가지고 갔는데 김씨의 진술과 자료 등을 바탕으로 혐의가 없다고 보고 풀어준 것으로 보인다.

괴한들이 김씨가 살고 있는 "사르코다 지역에 다시 오면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을 미루어봤을 때, 문맹퇴치교육과 주택개량사업 등 평소 김씨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현지 치안 경찰이 저지른 일일 수도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김씨가 당장 출국을 원해 조치했으며 13일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했다"며 "외교채널을 통해 파키스탄 측에 사건 조사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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