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수사 중인 일본 경시청 조사1과는 피해가 발생한 도쿄도(東京都) 도시마(豊島)구의 한 대형 서점에 불법 침입한 혐의(건조물 침입)로 30대 무직 남성을 체포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1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지난달 22일 이 서점에 허락 없이 전단을 붙였으며 경찰은 도서 구입 등 서점 본연의 용도에 맞지 않는 목적을 지니고 건물에 침입한 것으로 보고 그를 체포, 구금하고 있다.
산케이는 경찰이 지난달 19일과 훼손된 책이 확인된 같은 달 21일 촬영된 서점의 방범 카메라 영상에서 수상한 남성이 안네의 일기 등 관련 책이 진열된 3·4·8 층을 왕래하며 모습이 포착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체포된 남성이 '도서관의 (안네의 일기) 책을 훼손했다'는 진술을 하고 있지만,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발언을 하기도 해 형사 책임 능력 유무를 경찰이 신중히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서적 훼손이 도쿄도(東京都) 내 23구 중 북쪽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미뤄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책이 훼손된 일부 도서관의 방범 카메라에서는 체포된 남성과 비슷하게 보이는 인물이 찍혔지만 동일 인물인지는 명확하지 않고 책을 파손하는 모습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도쿄도 도시마구 등 5개 구와 무사시노(武藏野)시 등 3개 시의 도서관 38곳과 서점 1곳에서는 작년 2월부터 지난달까지 안네의 일기 등 유대인 관련 서적 310권이 훼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유감을 표명했고 미국 유대인 단체 '사이먼 비젠탈 센터'(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는 수사를 촉구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소재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박물관 전시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 3천400부를 일본 전역 도서관에 기부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자료 기증도 이어졌다.
한편 이번 사건을 누가, 과연 왜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가운데 일본 혐한단체 회원들이 사건을 한국인과 유대인이 공모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 논란이 일고 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사건이 처음 보도된 후 24시간도 못돼 일본 인기 웹사이트 2chan(2ちゃんねる) 게시판에는 전 세계 유대인을 한일 과거사 논쟁에 끌어들이려고 한국인들이 안네의 일기 등을 고의로 훼손했다고 비난하는 '넷우요'(ネトウヨ net uyo)로 불리는 우익 누리꾼들의 글이 수천 개나 올라왔다.
2chan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글 가운데 한 익명의 누리꾼이 게재한 글은 "범인이 아마도 유대인을 동지로 삼고자 하는 한국인이거나 중국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대인과 한국인이 함께 "이런 각본을 쓰고 지금 같이 연기까지 한다"고 비꼬는 누리꾼이 있는가 하면 "유대인이 그토록 혐오 대상인 것은 거리낌 없이 역겨운 짓을 하기 때문"이라는 댓글도 있다.
극우 정치단체 '유신정당 새 바람'의 전 부대표 세토 히로유키(瀨戶弘幸)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댓글들을 싣고, 우익인사는 안네의 일기가 날조된 것이고 찢어 버리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기 때문에 훼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이먼 비젠탈 센터의 에이브러햄 쿠퍼 부소장은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과 유대인이 사건을 공모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한국인, 유대인이 아니라 급진 우익세력이 한 짓"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