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 기자(이하 이):'블랙스완'(2011), '더 레슬러'(2008), '레퀴엠'(2000) 등을 통해 작가주의 성향을 구축해 온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무려 1억 3200만 달러(약 1405억 원)짜리 블록버스터에 손을 댔다. 판타지 요소가 강조됐다고는 하지만, 노아는 큰 틀 안에서 창조주가 빚어낸 우주, 원죄를 지닌 인류와 같은 성경의 세계관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려는 감독의 고집이 짙게 밴 작품으로 다가온다.
신진아 기자(이하 신) : 성경에는 기술돼 있지 않은 대홍수가 닥치고 방주에 올라탄 노아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영화적 상상으로 보탰다. 성경에 보면 노아가 신의 계시에 따라 놀랍도록 단호한 의지와 인내로 미션을 수행한 뒤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을 만큼 취하고, 아들들에게 험한 소리를 퍼부었던 것'으로 나오는 모양인데, 감독이 이 부분에 의문을 품었고, 이를 단서 삼아 노아의 가족에게 생긴 일을 창작했다고 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창세기부터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거쳐 노아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성경 이야기를 마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세계관을 설명하듯 풀어낸다. 여기서 '정말 판타지 영화로 만들었나'라고 짐작했는데 웬걸, 무엇보다 개인·사회적 갈등이 극 전반을 지배한다.
이: 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세 아들에게는 모두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세 며느리를 한 명으로 설정했다.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는데 첫째 아들만 임신이 불가능한 아내가 있고, 사랑을 갈구하는 둘째나 아직 어린 셋째에게는 짝이 없다. 이런 상황이 영화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장치로 활용되는데, 대홍수가 세상을 휩쓴 뒤 방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밀실 공포물을 보는 듯 답답하고 긴박하다.
신 : 방주를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신이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자연재앙을 일으키면 다른 생명체도 죽는다. 그 '무고한'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 방주를 만든다. 물론 인간도 그 생명체 중 하나로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탔는데, 영화에서는 노아가 신의 뜻을 헤아리면서 인류의 생존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신: 신비롭고 이색적인 분위기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방주를 무대로 좀 더 인물들 간의 갈등에 집중한다. 아버지와 아들, 부모와 자식 등 가족은 사회의 최소단위다. 이들의 갈등과 대립은 인간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이: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갈등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갈등이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타인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합, 협력을 통해 공생의 가치를 지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이 :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끝없는 욕망만을 부추기는 현재 세계를 비판하고 새 세상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자칫 종교적 입장에 머물 수도 있었을 이야기에서 현실 세계와 직결된 보다 보편타당한 가치를 길어 올렸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신: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는 969세에 생을 마감해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로 기록돼 있다. 안소니 홉키스가 므두셀라를 연기했는데 정말 적임자가 아닐 수 없다.
이: 노아 역의 러셀 크로우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제니퍼 코넬리와 엠마 왓슨에게 더 눈길이 가더라. 아역배우 출신인 제니퍼 코넬리가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전작 레퀴엠을 통해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해 폭넓은 연기 영역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아역 꼬리표를 떼려 애써 온 엠마 왓슨에게 이 영화는 성인식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감독이 만들어준 빛나는 무대에서 그녀는 아름답게 모두의 기대에 부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