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박 씨는 부푼 꿈을 안고 지난해 5월 사무실이 있다는 강원도 원주까지 갔다. 그러나 수익은커녕 제대로 운전조차 못 해보고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원주에서 만난 사람은 운수 회사와 화물차 운전자를 연결해주는 소위 '브로커'였다. 그는 "한 달에 평균 1,700만 원의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일을 시작하려면 차량 인수비와 권리금 등의 명목으로 9,5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당한 금액에 망설이던 박 씨는 브로커 권유에 따라 사금융 대출을 받았다. 매달 300만 원씩 할부 이자가 나가지만 되면 "고수익이 보장되기에 조금도 문제없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박 씨의 기대는 며칠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2주 만에 겨우 받은 화물차는 사고 차량을 수리한 것으로, 시동을 거는 순간 엔진에서 연기가 나는 등 상태가 엉망이었다. 물량이 많다던 화주는 박 씨가 들어오기 두 달 전 이미 계약은 끝난 상태였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고리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박 씨는 브로커에게 따졌다.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던 브로커는 며칠 뒤 잠적했다. 계약서를 썼던 사무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장 모(33) 씨 역시 브로커에게 속았다. "수도권을 돌며 대기업의 폐전선을 나르기만 하면 매달 2,1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역시 사금융에서 맞보증까지 서며 1억 4,000만 원을 대출받은 그였다.
지난해 3월부터 일을 시작한 장 씨는 계약과 달리 폐전선이 아닌 폐목을 운반했다. 해당 대기업과는 계약조차 안 됐던 것. 게다가 장 씨가 두 달 동안 일한 날은 겨우 17일에 불과했다. 매달 400만 원 가까이 나오는 이자는 100만 원 조금 넘는 실수입의 3배가 넘었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보장하겠다던 브로커는 "법대로 해라. 억울하면 고소하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운수회사는 "알선소와 해결하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장 씨는 "누가 지입일 한다고 하면 정말 협박을 해서라도 뜯어말리고 싶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입 브로커들은 '물류기업 취업'을 미끼로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수익을 챙긴다. 운수회사 대신 구직 및 차량 매입을 알선하면서 기사 중개 수수료, 번호판 및 차량 매매 수수료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는 차주들이 처음 계약할 때 내는 1억여 원의 돈에 포함돼 있다. 실제 차 가격은 절반에서 2/3 수준이지만, 이들은 나머지 금액을 모두 수수료로 챙긴다. 차주를 한 명 모집할 때마다 아주 짭짤한 장사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불법 브로커들이 판을 치고 있다. 물량이 없는데도 있다고 속여 차주를 모집한 뒤 사금융 대출을 받게 해 계약을 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알선 업체들은 가운데 절반은 유령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입차주 대표 김영대 씨는 "돈만 챙기고 잠적하는 알선소가 많아 사업자등록번호를 추적했더니, 상호만 다르고 같은 번호인 곳이 허다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확인한 50개 업체 가운데 30개 이상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 홈페이지 상호에 불과한 '유령 회사'였던 것.
인터넷상에는 'OO운수, OOO종합물류' 등 멀쩡한 물류 기업처럼 보였지만, 1개의 사업자번호로 최소 2개 이상의 상호로 운영하거나 심지어 10곳의 상호로 운영 중인 곳도 있었다.
김 씨는 "결국 차를 산 사람과 차량 등록 명의가 따로인 지입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차주들은 운전대를 잡고 나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거액의 할부금이 나온 뒤다.
이처럼 차주들이 운수회사와 브로커들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단순한 사기로 치부해 기껏해야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끝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