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등에서는 밤샘 근무는 예삿일이고, 하루 2~3시간 쪽잠을 자며 일을 하는 전공의들은 병원과 담당 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운신의 폭에 제약이 따른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막내급 의사들이 이번 대한의사협회 파업 사태에 적극 나서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형국이다.
전공의 1만7천여명 중 7천여명이 10일 집단 휴진에 동참한데 이어, 2차 파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들은 10일과 11일 긴급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오는 24일로 예정된 2차 파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대병원 소속 전공의는 7백여명, 서울아산병원은 6백여명 규모이다.
서울 빅5 병원 중 세브란스 병원은 10일 파업부터 참여한 상태이다. 여기에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합류하면서 총 세 곳의 전공의들이 빠지게 되면 진료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열악한 인력 구조 때문에 수술보조부터 실무 진료까지 전공의들에게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이처럼 파업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정부의 지나친 강경 대응이 한 몫했다는 관측이 많다. 정부와 검찰이 파업 참여에 대한 형사처벌은 물론 의사면허 취소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투쟁 열기가 고조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레지던트 2년차는 "개개인이 어렵게 딴 의사면허를 볼모로 정부가 협박을 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경모드가 전공의 참여로 확산되면서 역효과를 불러일으키자 정부도 내심 당황하는 기색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검찰청 공안부까지 나서서 의사면허 취소를 얘기해 솔직히 우리도 당황스러웠다"며 "부처간 발표 과정에서 수위 조절이 잘 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공의들은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등으로 바뀔 의료환경에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중견급 의사들과는 달리 전공의들은 곧바로 닥칠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뒤바뀌는 의료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주니어급 의사들이다. 이들이 더 절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건강보험의 불균형적인 수가구조로 인한 폐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도 전공의들이다. 인턴들은 1년 동안 모든 과에서 한달 주기로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고, 레지던트들도 동료들과의 교류로 타과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에 전공의가 부족해 환자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부터 수가가 맞지 않아 병원 눈치를 보며 진료를 하는 경우까지 여러 사례들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개원의나 전문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보다 문제 의식이 클 수 밖에 없다.
최근 인턴수련을 마친 한 전공의는 "외과가 적성에 맞고 관심도 있었지만 워낙 인력이 모자라 격무에 시달리면서 힘들어하는 선배들을 보고 결국 다른 인기과를 지원했다"며 "지금 수가구조는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대 목동병원 한 전공의의 글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산모 사망률이 증가하는 나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전공을 포기하는 나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수도권을 제외하고 흉부외과 의사가 배출되지 않는다"
한편, 아직 학생 신분인 예비 의사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전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 학생협회(의대협)는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 상황에 침묵하지 않겠다며 "의사들의 의료 투쟁을 응원하고 학생 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