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언급한 이른바 '염전 노예'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현지 염전 주인과 경찰 간 유착 의혹을 감찰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신 지역 염전 등 관리·감독 소홀을 이유로 전남 신안군 도서 지역 파출소 직원 대부분을 갈아치웠다.
인권·시민단체들은 "경찰의 직무유기 때문에 오랜 기간 노동 착취가 이뤄졌다"며 경찰의 감찰 결과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 경찰, "유착 확인 안 됐다"
앞서 지난 1월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시각장애인 김 모(40) 씨가 가족에게 편지를 써 극적으로 구출됐다.
당시 김 씨는 근처에 있는 파출소에 신고하지 않고 이발소를 통해 편지를 부친 것으로 확인돼 염전 주인과 지역 경찰들의 유착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사건이 커지자 이성한 경찰청장은 특별 감찰을 지시했고 지난달 10일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은 6명으로 감찰팀을 꾸려 목포경찰서와 전남지방경찰청에 급파했다.
하지만 경찰청은 "노동 착취와 관련해 염전 주인과 지역 경찰과 유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지 파출소 직원들이 도로 중심으로 순찰을 해 염전 구석구석까지 다 들여다보지 못했다"며 감독을 소홀히 한 점은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파출소 직원들이 '염전 부분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수사 결과에 책임을 느낀다',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2006년에도 해당 지역에서 '노예 할아버지', '노예 청년' 등 노동 착취 피해자가 잇따랐다는 점에서 경찰의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해당 파출소 직원 4명을 포함해 신안군 섬 지역 15개 파출소 직원 87명 중 74명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 인권·시민단체 발끈 "경찰이 인지해도 처벌 안 한다"
인권·시민단체는 경찰과 염전업자 간 유착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 발표에 강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염전 노예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김 모 씨는 "염전 등 작은 규모의 영세사업장 운영자는 대부분 동네 유지"라며 "해당 지역에 상주하는 지역 경찰과 관계가 잘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역 경찰이 인권침해 사범을 인지해도 처리하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장애인 착취 등의 사례는 대부분 경찰이나 지역 주민의 신고가 아니라 외지 사람들의 신고로 외부에 알려진다"고 강조했다.
전남에서 활동 중인 인권운동가 박 모 씨는 "섬 지역 경찰의 경우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며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관련 피해자를 더 빨리 구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장애인 인식 개선 등 관련 교육이 경찰 직무 과정에 포함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염전 노예 일제단속, 악덕업주 등 26명 입건
한편 경찰은 특별 단속을 벌여 지적장애인을 폭행하고 임금을 주지 않은 혐의로 염전 주인 홍 모(56) 씨 등 3명을 구속하고 26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 홍 씨는 청각장애인 강 모(41) 씨를 유인해 전남 신안군에 있는 자신의 염전에서 약 10년간 일하게 하고 임금 1억 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홍 씨는 지난달 일명 '염전 노예'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자 부인 박 모(51) 씨와 함께 강 씨를 목포 시내 한 모텔로 빼돌려 경찰 수사를 피하려는 치밀함을 보였다.
강 씨와 마찬가지로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김 모(50) 씨 등 2명을 유인해 7년간 일을 시키면서 임금 9,000만 원을 주지 않은 또 다른 염전업주 한 모(47) 씨도 붙잡혔다.
염전에서 일하다 이번에 구조된 피해자 대부분은 지적능력이 떨어져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22명 가운데 7명은 지적장애인이었고 나머지 15명도 장애등급을 받지 않았을 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이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거나 보호시설로 인계 조치했다.
이런 가운데 광주 서부경찰서는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며 노숙인들에게 접근해 이들을 섬 염전과 양식장에 팔아넘긴 혐의(영리 목적 약취·유인)로 심 모(52) 씨를 구속했다.
심 씨가 "팔아넘긴 노숙자가 100여 명에 이른다"고 털어놓음에 따라 경찰은 이들을 데려가 일을 시킨 업주들의 임금 체불 또는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